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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충남]‘28’ 작가 정유정 “작가의 임무는 진실을 말하는 것”

입력 | 2013-11-04 03:00:00

대전 계룡문고에서 북 콘서트




대전 계룡문고에서 열린 북 콘서트에 참석한 정유정 작가(앞줄 가운데)가 청중과 대화하며 웃고 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최신작 ‘28’에서 보듯 정유정 작가가 광주 문제(5·18민주화운동)나 죽음 등을 작품에 반영한 것은 오래된 일이고 작가가 된 이유기도 해요.”

최근 대전 계룡문고에서 열린 ‘정유정 작가 초청 북 콘서트’ 대담을 맡았던 충남대 자유전공학부 김정숙 교수(문학박사)는 3일 “정 작가와 헤어진 뒤 그의 초기 작품 ‘마법의 성’을 다시 읽으면서 이런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번 콘서트에서 정 작가는 김 교수와 독자 관객들의 질문에 답변했다. 인디밴드인 이지에프엠은 ‘28’ 주인공인 재영의 주제가를 불렀다. ‘28’은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확산된 한 도시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다.

―왜 작가가 됐나.

“고향인 전남 함평에서 광주로 유학 온 뒤 15세 때 겪은 5·18민주화운동이 계기였던 것 같다. 진압군이 시민군이 있던 도청을 공격하던 그날 공포를 잊으려 잠을 청하기 위해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집어 들었다. 어느 샌가 동이 트고 있었고 소설은 마지막 장이 넘어가고 있었고 총소리는 그쳐 있었다. 모두 무력 진압됐을 것이라는 불길한 확신이 소설의 감흥, 새벽의 여명 등과 오버랩 되면서 오열했다. 그때 ‘작가가 돼 독자에게 이렇게 (존재와 진실 앞에서) 눈물 흘리는 새벽을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28’에는 5·18민주화운동의 상황이 반영됐다. 정 작가는 “‘28’을 설계할 때 5·18 자료집 펴 놓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간호사가 됐는데….

“어머니가 안정된 직업을 원했다. 하지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습작을 꾸준히 하다 늦은 나이(41세)에 등단을 했다.”

―인생의 전환점은….

“어머니의 죽음이다. 20대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간호사 생활을 하면서 동생들을 뒷바라지해야 했다. 20대에 내 인생을 못 살았기 때문에 결혼하면서 남편에게 집을 사면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결혼 6년 만에 집을 산 후 1년을 더 다니고 직장을 그만뒀다. 나중에 들으니 흔쾌히 허락했던 남편은 내심 혼자 벌어 가정을 꾸릴 생각에 막막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잘한 일 같다고 말한다(웃음).”

―‘28’ 초고를 쓴 뒤 마무리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구제역으로 수많은 돼지가 생매장되는 장면을 보고 인간에 대한 환멸과 죄책감과 부끄러움에 시달려 A4용지 6장 분량의 시놉시스(요약)를 단숨에 썼다. 그런 뒤 기초지식인 동물심리학과 동물행동학, 개 해부학, 바이러스학 등을 공부했다. 하지만 한동안 한 발짝도 못 나아갔다. 본래 인간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바이러스 이야기가 압도했기 때문이다. 시놉시스만 빼고 다 없앤 뒤 다시 글을 썼다.”

―한국 문학을 어떻게 보나.

“단편소설은 많은 데 비해 장편소설은 너무 적다. 장편의 등용문조차 너무 좁다. 산에는 소나무도 필요하지만 다른 나무도 있어야 아름답고 건강하다. 동종교배만 있으면 병이 생긴다.”

―앞으로 다뤄 보고 싶은 주제는….

“악(惡)의 문제를 꾸준히 다뤄 보고 싶다. 성악설도 성선설도 모두 인간의 심성이다. 인간이 어떤 상황에서 악을 드러내는지, 어떤 버튼을 누르면 마음이 지옥으로 변하고 광기에 휩싸이는지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 싶다.”

―어떤 작가로 남고 싶나.

“작가의 세상에 대한 임무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상업주의에 짓눌리거나 논란을 피하기 위해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