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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정신대 할머니들 14년 싸움끝에… 손해배상 첫 승소

입력 | 2013-11-02 03:00:00

광주지법 “강제노동 피해 명백… 日 미쓰비시 1억5000만원씩 배상”
할머니-유족 “국격 회복의 날”




“만세, 이겼습니다. 오늘은 국격 회복의 날입니다.”

1일 오후 2시경 광주지법 앞에서 양금덕 할머니(82)가 밝은 표정으로 만세 삼창을 외쳤다. 양 할머니 등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이 14년간의 힘겨운 소송에서 이긴 것이다.

광주지법 제12민사부(부장판사 이종광)는 양 할머니 등 5명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미쓰비시가 양 할머니 등 할머니 4명에게 각각 1억5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또 숨진 아내와 여동생을 대신해 소송을 제기한 김중곤 할아버지(89)에게 8000만 원을 지급하도록 했다.

재판부는 “일본이 13∼14세 소녀이던 피해자들을 데려간 뒤 열악한 환경에서 가혹한 노동을 시키고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일본이 등록한 조약에도 청소년 강제노동을 금지하고 있지만 50년 이상 책임을 부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종광 부장판사는 선고에 앞서 법원이 늦게 배상 판결을 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일본 전범 기업들의 해결을 당부하는 소회를 밝혔다.

양 할머니 등은 1944년 ‘일본에 가면 중학교를 보내 주고 돈도 많이 벌게 해 준다’는 일본 교장 등의 말에 속아 미쓰비시에 끌려가 17개월간 강제노동에 시달렸지만 임금을 받지 못하는 등 각종 피해를 보았다.

양 할머니 등은 일본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1999년 미쓰비시 등을 상대로 나고야 지방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2008년 도쿄 최고재판소에서 기각됐다. 이들은 한국 대법원이 지난해 5월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 손해배상을 인정함에 따라 지난해 10월 광주지법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날 선고는 여성 근로정신대 피해자에 대한 국내 첫 판결이다. 배상액도 그동안 강제 징용 판결 3건 중 가장 많다. 앞서 올 7월 서울고법은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에 강제 징용 피해자 4명에게 1억 원씩을, 부산고법은 미쓰비시에 피해자 5명에게 각 8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9명은 18∼22세 때 일제 강제 징용 피해를 본 남성들이다.

일제 강제 수탈의 상징인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은 1944년 소녀 시절 일본으로 끌려가 17개월간 강제 노동에 시달렸다. 피해자는 1700명으로 추정되지만 2006년 정부에 161명이 피해 신고를 했고 현재 정확한 생존 인원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피해자들은 2009년 일본 후생노동성 사회보험청의 후생연금 탈퇴 수당금 1인당 99엔(당시 약 1280원) 지급 통보를 받고 분노했다.

미쓰비시는 한국에서 인공위성 발사 용역이나 화력발전소 건설 등에 참여해 배상액 가압류 등 강제 집행이 가능하다. 이상갑 변호사는 “강제 집행보다 미쓰비시에 재협상을 우선 타진할 계획”이라며 “재협상이 결렬될 경우 피해 할머니들이 고령인 점을 감안해 강제 집행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