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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일자리 리스타트]일자리 절반이 시간선택제… “주3, 4일 일해도 승진차별 없어”

입력 | 2013-11-01 03:00:00

2부 해외 사례<2>네덜란드




“여성 경력단절? 걱정없어요” 네덜란드의 직장인 대상 교육훈련 전문기업인 ‘NCOI그룹’ 직원 400여 명 중 70%는 시간선택제 근무를 하는 여성들이다. 이 회사에서는 일주일에 3일, 4일씩 일하는 여성들도 매니저급으로 승진하는 데 전혀 차별이 없다. 암스테르담=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지 난달 23일 오후 3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시 교외의 한적한 주택가. 단풍이 물든 가로수 사이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흰색 페인트가 깔끔하게 칠해진 자닌 크루스 씨(35·여) 집 안에 들어서자 거실 탁자 위에 고무찰흙과 소꿉놀이 도구가 가득했다. 인터넷기업 ‘몬스터보드’에서 일하는 크루스 씨에게 수요일은 ‘엄마의 날’이다. 두 살, 다섯 살짜리 아이가 있는 그녀는 1주일에 28시간 근무한다. 1주일 중 4일만 일하는 남편은 금요일에 쉰다. 당연히 금요일은 남편이 아이를 돌보는 ‘아빠의 날’이 됐다. 》

“네덜란드 엄마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 내내 보육시설에 맡기는 걸 싫어해요. 보모 비용이 비싼 이유도 있고요. 하지만 네덜란드에서는 부부가 함께 일해야 생활이 되기 때문에 엄마들이 하루 종일 아이만 보며 살 수도 없어요. 집세를 내면서 문화생활도 즐기려는 부부에게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예요.”

직장생활 16년차인 그녀는 원래 회사와 전일제(주 36시간) 근무계약을 맺었다. 크루스 씨는 “지금은 아이를 키우느라 시간제로 바꿨지만 언제든지 내가 요구하면 전일제 근무로 돌아갈 수 있는 법적권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네덜란드의 전체 노동자 중 시간선택제 일자리 고용 비율은 49.8%로 유럽에서 가장 높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의 평균은 19.9%. 이 때문에 네덜란드는 ‘세계 최초의 시간제 고용경제’라고 불린다. 네덜란드 정부가 양질의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확산시키기 위해 수십 년간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온 결과다.

○ ‘노동시간 줄이기’가 가져온 시간제 일자리 경제

1980년대 초 네덜란드는 경제위기를 맞아 실업률이 11.7%까지 급증했다. 실업난 해소를 위해 1982년 노사정 대표들이 모여 ‘바세나르 협약’을 체결했다. 핵심 내용은 임금 인상을 억제하는 대신 근로시간을 단축해 일자리를 나누는 것. 이로 인해 시간선택제 일자리의 비중이 크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공공기관들이 먼저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산에 적극 동참했다. 전일제 근무시간을 36시간으로 줄이고 시간제 근로자를 대폭 채용했다.

암스테르담 시청에서 노동정책 전략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는 드리스 바스텔링크 씨(42)도 시간제 근무자다. 그는 “공공 분야에서는 남성들도 시간제 근무가 일반화돼 있다”고 소개했다. 공무원 시간제 근로자들은 대부분 1주일에 4일(총 32시간) 일하며 3일만 일하는 여성들도 있다. 바스텔링크 씨는 “보건, 교육 분야에서는 시간제로 근무한 여성들이 고위직으로 승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시간제 일자리 덕분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0년 유로화 위기 때에도 네덜란드의 실업률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지난해 EU의 평균 실업률이 10.5%였지만 네덜란드는 5%에 불과했다. 유럽 평균이 22.8%인 청년실업률도 네덜란드는 9.5%에 그쳤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교외의 한 주택가에서 만난 자닌 크루스 씨. 아이가 생긴 후 그와 남편은 일주일에 4일만 일하는 시간선택제 근무를 하고 있다.

○ 시간선택제 보호하는 법률, 복지 시스템

암스테르담 시내에 본부를 둔 직장인 교육훈련 전문기업 ‘NCOI그룹’의 직원 400명 중 70%는 시간제 근무를 하는 여성이다.

지난달 24일 이 회사에서 만난 프로젝트매니저 파티마 씨(29)는 첫째를 낳은 뒤 주 4일만 근무하고 있다. 임신 중인 그녀는 둘째를 낳은 후엔 주 3일만 일할 계획이다. 남편도 직장에서 근로시간을 줄여 육아를 돕기로 했다.

부부가 이렇게 근무시간을 줄여도 소득 감소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아이가 아홉 살이 될 때까지 정부가 ‘육아보상금’을 지급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에서는 부모가 육아를 위해 줄인 근무시간을 시간당 임금 4.5유로(약 6500원)로 계산해 세액공제를 해준다. 파티마 씨는 “첫째를 낳고 근무시간을 줄인 뒤 정부에서 1년에 1000유로(약 145만 원)가 조금 넘는 세금면제 혜택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네덜란드의 시간선택제 근무 확산에는 출산 및 육아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법에 의한 보호가 배경이 됐다. 1996년 시행된 이 나라의 ‘근무시간에 의한 차별금지 법안’은 인종, 성별과 마찬가지로 ‘근무시간’을 이유로 근로자를 차별 대우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 법에 따르면 네덜란드에서는 주 13시간 이하 ‘초단시간 시간제 근로자’를 포함해 모든 시간제 근로자들은 법률이 보장한 최저임금제에 기초한 월급을 받는다. 또 시간제 근로자는 전일제 근무자와 차별이 없는 시급, 휴가, 보너스 규정을 적용받는다. 또 다른 보호법은 9년에 걸친 정치적 협상 끝에 2000년부터 시행된 ‘근무시간 조정법’. 육아, 출산 등 특별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근무시간을 변경할 권리를 근로자에게 준 것이다.

네덜란드의 높은 고용률과 반비례해 연간 근로시간은 모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낮다. 2012년 기준 1381시간으로 한국(2100시간)의 66% 수준이다.

<특별취재팀>

▽팀장 박중현 소비자경제부 차장 sanjuck@donga.com
▽소비자경제부 김현진 김유영 기자
▽경제부 박재명 기자
▽사회부 이성호 김재영 기자
▽국제부 전승훈 파리 특파원, 박형준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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