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 러시 더 라이벌
페라리의 레이서 니키 라우다(64·오스트리아)는 1976년 F1 독일 그랑프리에서 빗속을 달리다 참혹한 사고를 당합니다. 가파른 코너링 구간에서 미끄러져 벽을 들이받은 차는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니키는 전신에 화상을 입은 채 구급차에 실려 갑니다. 맥라렌 팀의 제임스 헌트(1947∼1993·영국)는 인생 최고의 라이벌이 생사의 위기에 놓인 모습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봅니다. 당시 F1은 미처 안전 대책이 수립되지 않아 경기 중 사망하는 선수가 적지 않았습니다.
다시는 서킷에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니키는 시즌이 채 끝나기도 전인 42일 만에 이탈리아 그랑프리에 출전해 ‘불사조’라는 별명을 얻습니다. 그해 마지막 그랑프리가 열린 일본 후지스피드웨이까지 두 맞수는 세계 챔피언 자리를 놓고 치열한 접전을 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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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이 실화는 최근 론 하워드 감독이 선보인 영화 ‘러시 더 라이벌’을 통해 재현되어 다시 한 번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한스 치머의 OST보다도 호쾌한 F1 엔진소리를 들으며 두 레이싱 영웅의 섬광 같던 삶을 스크린에서나마 보고 있자니 주먹에 힘이 불끈 들어가더군요.
당사자에게도, 경쟁을 지켜보는 이에게도 라이벌이 있다는 건 행운입니다. 진정한 라이벌은 서로의 삶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려 주는 존재라고 하지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지는 몰라도, 그런 라이벌을 꼭 한 번쯤은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나저나 요즘 F1은 4년 연속 세계 챔피언을 노리는 제바스티안 페텔(인피니티 레드불 레이싱팀)의 독주가 계속되고 있어서 재미가 영….
이진석 기자 ge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