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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女계장… 집도 은행도 환해졌다

입력 | 2013-10-23 03:00:00

IBK기업은행에 하루 4시간 시간제 근로자로 입사한 주부 3인




지난달 IBK기업은행이 금융권에서 처음으로 시간제 근로자 채용에 나서며 다시 은행원이 된 세 명의 워킹맘. 독고윤미 개인고객부 미래고객팀 계장(위쪽 사진), 정순미 고객센터 계장(가운데 사진), 이준경 김해중앙지점 계장(아래 사진). 이들은 “다시 직장에 다니게 되면서 한동안 잊고 살았던 삶의 열정과 에너지를 되찾았다”고 입을 모았다. IBK기업은행 제공

《 서울 용산구 한남동 기업은행 고객센터에서 전화상담 업무를 맡고 있는 정순미 계장(36). 그는 한 달 전만 해도 남편과 아이 뒤치다꺼리에 바쁜 평범한 은행원 출신의 전업주부였다. 그도 한창 때는 영업점에서 알아주는 ‘똑순이 행원’이었지만 가정과 집을 한꺼번에 챙겨야 하는 맞벌이 엄마의 버거운 삶은 고달팠다. 선택의 기로에 선 정 계장은 아들 형주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인 2010년 은행을 그만뒀다. 행원 경력도 그걸로 끝나는 듯했다. 평범한 여성들처럼 일보다 가정을 선택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늘 찜찜했다. 정 계장은 “‘엄마는 나 학교 가 있는 동안 뭐 하면서 있어?’라는 아들의 질문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며 “IBK기업은행의 ‘정년보장형 시간제 근로자’ 채용 공고를 보고 망설임 없이 지원했다”고 말했다. 은행 일은 아직도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시간제 근로자들은 원하는 시간대에 하루 4시간씩 근무하면 된다. 과거처럼 일과 가정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일과 가정을 함께 챙길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지난달 26일 첫 출근을 하는 그에게 남편은 “형주 엄마에서 정순미 씨로의 복귀를 축하합니다”라는 인사말을 건넸다. 시간제 일자리가 가져다 준 인생 2막의 시작이었다. 》

○ 하이힐 다시 신고 되찾은 삶의 열정


지난달부터 서울 중구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 개인고객부에서 일하고 있는 독고윤미 씨(40)도 시간제 근로자다. 독고 씨는 가정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면서 ‘경력 단절’을 겪었다. 한미은행, 한국씨티은행, HSBC은행을 거치면서 11년간 차근차근 은행 경력을 쌓았지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부쩍 엄마를 찾자 마음이 흔들렸다. 다니던 은행에서 명예퇴직 신청을 받자 미련 없이 사표를 냈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엄마의 손을 덜 필요로 하게 되자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우울함이 찾아왔다. 남편과 아이에게 짜증도 부쩍 많이 냈다.

4년 6개월 만에 다시 은행원이 되면서 그는 삶의 열정과 에너지를 얻었다. 그는 “가족이 아닌 어떤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느끼는 소속감과 일에 대한 책임감이 나를 살아 숨쉬게 하는 것 같다”며 “내가 생기를 되찾으니 집안 분위기도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은 49.9%, 남성은 73.3%이다. 여성 경제활동 참여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으로 올라가면 1인당 국민소득이 14%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결혼 육아 등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의 재취업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 연륜 있는 ‘리턴맘’은 은행에도 힘


국내 금융권에서 처음으로 정년까지 고용이 보장되는 시간제 근로자 채용은 은행에도 일종의 모험이었다. 일과 가정생활 양립이 가능해진 개인에게는 좋은 기회지만 시간제 근로자의 생산성에 대한 의문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하지만 은행 내부에서는 전직 은행원 출신의 시간제 근로자들에 대해서는 벌써 “역시 연륜이 무섭다”는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기업은행 인사부 이승은 팀장은 “직원과 고객으로 은행을 경험했던 만큼 고객들이 원하는 부분을 미리 알고 세심하게 배려한다는 것도 이들의 장점”이라며 “고객 대응 능력도 뛰어나다”고 말했다.

김해중앙지점에서 창구 텔러로 일하게 된 이준경 계장(40)은 “은행에 오시는 고객들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했다가 다시 들를 때 꼭 알은척을 한다”며 “내가 고객이었을 때 감동받았던 은행원들의 자세를 기억했다가 최근에 이를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세대 이지만 교수(경영학)는 “사회 전반적으로 고용률을 끌어올리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여성 인력을 활용하고 시간제 근로자 같은 유연한 고용 형태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