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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허술한 디테일… 이야기의 초점 흩뜨려

입력 | 2013-10-08 03:00:00

연극 ‘아버지의 집’ ★★




연극 ‘아버지의 집’에서 미묘한 관계의 건축과 교수 지용(왼쪽·김학선)과 제자(김정은)가 캔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남산예술센터 제공

예술의 영역에 둔 글쓰기는 자칫 한가로운 방심으로 흘러가기 쉽다. 현실을 배경과 재료로 삼는다면 더욱 그렇다. 골방에서의 작업으로는 좀처럼 좋은 이야기를 빚어내기 어렵다. 많은 작가들이 불편하고 험한 일상과의 접점을 최대한 넓게 유지하는 이유다.

2일 서울 남산예술센터에서 막을 올린 연극 ‘아버지의 집’은 대학 건축과 교수인 아버지가 지어 10여 년을 살아온 경기 양평 집을 허물고 다시 지으려는 건축가 딸과 주변 인물들에 얽힌 이야기를 담았다. 제작진은 “아버지의 부재(不在) 때문에 자기 삶이 완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다. 아버지라는 근원이 흔들리는 모습이 내 존재의 불안으로 이어짐을 보여주려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불안을 이야기하려 하는 연극 스스로가 90분 내내 불안하게 흔들린다. 나름의 사연을 가진 등장인물만 일곱 명. 각자 조금씩 절실한 속내를 털어놓지만 조각난 독백이 이리저리 맥없이 흩뿌려질 뿐이다. 왜일까. 이야기 흐름은 훌륭하게 정돈된 무대에 걸맞게 얼핏 매끄러워 보인다. 맹점은 현실에 대한 취재 부족을 여실히 드러내는 캐릭터들이다.

“방 때문에 사람이 변하지는 않아.” 건축가인 딸의 대사다. 극 중반 무심코 지나칠 법한 대화에 섞여 있지만 건축 일의 가장 기본적 가치를 부정하는 내용이다. 머물 곳 없어 더부살이하는 교수의 여제자는 위암 말기 모친을 병원에 입원시켜 놓은 채 임종의 순간까지 무심하게 방치한다. 현실에도 그런 딸은 있겠지만 보호자가 방치한 환자를 곱게 보살펴 줄 병원은 없다. “책 한 권 제대로 읽어본 적 없다”는 공사 현장 감독의 대사에는 ‘안전모 쓴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오롯하다. 재일교포 2세 사진작가는 자신의 카메라를 아무 데나 방치하고 누구든 만져볼 수 있게 한다. 역시 현실의 사진작가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사소한 꼬투리를 책잡는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그 이야기와 관련된 진짜 현실의 살갗을 발로 뛰며 살펴 매만져봐야 한다. 세밀하게 정돈하지 못한 사변의 토로를 나열하는 것은 객석에 앉아 무대로 눈과 귀를 고정한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현실을 뒤집는 부조리극이라도 그 묘미는 때로 치열한 디테일 틈새로 배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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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까지. 김윤희 작, 박정희 연출.신철진 김승철 김학선 김정은 조선주 박지환 전유경 김민하 임성미 출연. 1만5000∼2만5000원. 02-758-2150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