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서 숨진 손동식씨 유해 국내 봉환… 탈북한 딸과 北친인척 노력 결실
나라를 위해 바친 목숨이 60년 만에 유골(遺骨)로 돌아왔다. 6·25전쟁 때 국군포로로 끌려가 북한에서 숨진 고(故) 손동식 씨(1925년생)의 유해가 5일 중국을 거쳐 국내로 봉환됐다. 국군포로 유해가 민간의 힘으로 온전히 북한 땅에서 반출돼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처음이다.
▶본보 9월 11일자 A1면 北의 국군포로 유해, 탈북 딸이 중국 반출
▶본보 9월 28일자 A22면 손명화 “北서 짐승처럼 살다간 아버지, 조국땅에…”
국방부는 이날 국군포로에 준하는 예우를 갖춰 손 씨의 ‘귀국’을 맞았다. 인천의 모처로 들어온 손 씨의 유골함은 태극기로 감싸져 곧바로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으로 옮겨졌다. 유골함은 진혼곡이 울리는 가운데 국방부와 서울현충원 관계자들의 거수경례를 받으며 영현봉환관에 안치됐다.
손 씨의 ‘유골 귀환’은 딸인 명화 씨(51·탈북민복지연합회장)의 눈물겨운 노력 덕분이었다. 육군 9사단 소속 이등중사(지금의 병장)로 참전한 손 씨는 정전(1953년 7월 27일) 3개월 전 공산군에 생포됐다. 국군포로라는 이유로 평생 지하탄광에서 중노동에 시달리다 폐암에 걸린 손 씨는 1984년 임종 직전 딸에게 자신의 고향을 경남 김해라고 알려줬다. 그의 유언은 “너만이라도 꼭 그곳으로 가라. (나중에) 내 유해도 고향 땅에 묻어 달라”는 한 맺힌 당부였다. 죽어서라도 북한을 벗어나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일생의 소원이었다.
그로부터 20여 년 뒤 탈북한 명화 씨는 부친의 유해를 한국으로 가져오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결국 지난달 북한에 남아 있는 친인척들이 무덤에서 손 씨의 유해를 수습한 뒤 배낭에 넣어 북-중 접경지역에서 중국인 브로커에게 전달했다. 손 씨는 국군포로송환위원회를 운영하는 사단법인 물망초의 협조를 얻어 부친의 유해를 국내로 가져올 수 있었다. 명화 씨는 “마침내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감개무량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에 앞서 2004년 이연순 사단법인 6·25국군포로가족위원회 대표가 아버지 이규만 씨의 유해 반출을 시도했으나 중국 공안에 적발되는 바람에 유해의 절반이 유실됐다. 이 외에도 한국으로 송환된 4구의 국군포로 유해가 더 있지만 북한에서 유골을 화장한 뒤 함에 담아 옮겨진 것이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베이징=고기정 특파원 ysh1005@donga.com
▶ [채널A 영상]6·25 국군포로 추정 유해 60년 만에 고국 품으로…
▶ [채널A 영상]정부, 국군포로-납북자 생사확인 요구…대답 없는 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