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가을 정원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
201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의 가을 풍경. 박람회 관람객들이 23개 국가 83개 정원 중 하나인 순천호수공원을 거닐며 살며시 다가오는 가을을 즐기고 있다. 순천호수공원은 순천시내를 둘러싼 산과 강을 형상화한 여섯 개 언덕과 호수·나무데크로 이뤄져있다. 여섯 개 언덕에서 바라보는 정원박람회장은 각자 다른 가을 풍광을 뽐낸다. 순천=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27일 전남 순천시 대대포구 갈대는 솜 꽃술을 떨구며 가을이 오는 소리를 냈다. 가을 햇살을 머금은 갈대가 누렇게 옷을 갈아입었다. 김청미 시인은 순천만의 갈대를 이렇게 노래했다. “너를 보고 있으면 마음대로 흔들려도 될 것만 같아. 바람이 불면 바람처럼, 비가 오면 비처럼, 흔들려도 괜찮을 것 같아.” 가벼운 바람에도 춤을 추듯 흔들리는 갈대밭 앞에 잠시 걸음을 멈춘 사람들이 저마다의 추억을 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했다.
순천만은 하늘이 내려준 정원이다. 22.6km²에 달하는 드넓은 갯벌, 5.4km²의 갈대밭에 바닷물이 수시로 드나들고 철새와 여러 종의 식물들이 무성하게 자라는 생태계의 보고다. 그래서 순천만의 사계는 늘 생명력이 넘친다. 봄에는 갈대 새순이 돋아나 신비한 생명력으로 빛나고 여름에는 온갖 종류의 게, 짱뚱어 등의 생물이 마음껏 뛰논다. 가을이면 갈대가 황금물결을 이루고 겨울이면 200여 종의 철새가 찾아 장관을 이룬다. 여행객들은 순천만으로 발길을 돌리면 두 개의 천상정원을 만날 수 있다. ‘생명 쉼터’인 순천만과 생태·문화 체험장인 ‘2013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장’이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두 개의 천상정원을 거니는 가을산책을 떠나자. ‘지구의 정원 순천만’을 주제로 4월 20일 개막한 정원박람회는 10월 20일 폐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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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5대 연안습지인 순천만에도 가을이 왔다. 순천만은 멀리서 보면 나른할 만큼 한산해 보이지만 230여 종의 철새와 120여 종 식물이 어울려 사는 생태계의 보물창고다. 가을에 순천만 갈대 숲 사이를 걷노라면 바람에 사각거리며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순천시 제공
150년 전부터 유럽 등에서 열려온 정원박람회는 다양한 정원을 통해 푸른 도시를 만들어 가는 미래형 박람회다. 순천만 정원박람회는 순천만으로 도심이 팽창하는 것을 막고 순천만과 도심을 연결하는 생태벨트를 완성하기 위해 국내에선 처음으로 개최됐다. 원박람회장 23개국 83개 정원도 따스한 봄과 뜨거웠던 여름을 지내고 이젠 가을 옷으로 갈아입었다. 국화, 포인세티아 등 40만 송이가 활짝 피어 관람객을 맞고 있다. 허수아비와 억새풀, 붉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나무를 벗 삼아 정원을 거닐다 보면 생태와 문화가 숨쉬는 축제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장미꽃으로 치장한 영국정원에는 나비들이 풍성한 가을을 노래하고 쑥부쟁이, 들장미로 둘러싸인 독일정원은 만추(晩秋)의 한가로움을 느낄 수 있다.
180년 전통의 국제 정원 박람회인 영국 첼시 플라워쇼에서 2년 연속 입상한 정원디자이너 황지해 씨가 만든 ‘정원 갯지렁이 다니는 길’에도 가을 향기가 물씬 풍긴다. 정원박람회 수목원 내 한국정원과 편백나무 숲, 늘 푸른 정원은 천천히 걸으며 사색을 즐기기에 좋다. 한국의 오래된 정원풍경을 재현한 한국정원은 오래 머물수록 멋스러움이 더해진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날씨지만 구들장 같은 온기를 느끼기에 충분한 공간이다. 늘 푸른 정원은 후박나무, 가시나무 등이 심어져 있다. 사시사철 파란 잎의 활엽수가 만드는 운치 있는 산책로와 편백나무 1000그루가 심어진 숲은 지친 심신을 달래준다.
순천만 국제습지센터에서는 순천만의 세계적 위상과 생태 가치를 한 자리에서 느낄 수 있다. 습지센터 지붕 위에 조성된 하늘정원에서는 정원박람회장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앞에 조성된 호수에는 다양한 습지 수생식물과 조류를 볼 수 있다. 조병철 2013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 기획운영본부장은 “사색과 산책이 어울리는 가을에 또 다른 천상정원인 정원박람회장을 가족, 연인과 걸어보면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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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들어서 순천만이 ‘살아 있는 자연교과서’로 알려지면서 탐방객이 크게 늘기 시작했다. 생태관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한 몫을 했다. 2002년 10만 명 수준이던 탐방객이 2010년에는 300만 명에 육박했다. 지난해에는 235만1000명이 다녀갔다.
탐방객이 몰려들자 순천시와 시민들은 순천만에 설치된 전봇대 282개를 철거하고 대대포구 내 음식점, 환경오염시설을 없앴다. 다양한 보전 노력에도 불구하고 순천만은 늘어나는 탐방객과 차량으로 몸살을 앓았다. 시민들이 고심 끝에 결정한 것이 정원박람회장 조성이다. 정원박람회장이 도심 팽창은 물론이고 차량 유입으로부터 순천만을 지켜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순천의 판단은 현명했다. 올 8월까지 순천만을 찾은 탐방객은 128만85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24만9852명보다 3% 늘었다. 하지만 순천만에 유입된 차량은 20만416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 22만3956대보다 10.5% 감소했다. 탐방객이 정원박람회장을 둘러본 뒤 셔틀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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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시는 정원박람회가 끝나면 광범위한 순천만 기초생태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순천만 식물 변화나 철새 종류 등 총체적인 조사를 통해 지구의 정원 순천만을 가장 잘 보전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시동을 건다. 나승병 조직위 사무총장은 “정원박람회는 국내 최고 생태관광지인 순천만을 보전하고 순천을 녹색생태도시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