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이 가을마당 아리스토파네스 3부작으로 선보인 ‘개구리’(위)와 ‘구름’. 은유를 통한 풍자보다는 직설 화법과 말초적 유머를 나열해 ‘고대 그리스 희극을 바탕으로 현실을 비판하겠다’는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는 평가다. 국립극단 제공
“언제부터 돼지새끼들이 잔칫집 주인이 됐는지…. 저승으로 내려가서 돌아가신 그분을 여기로 모시고 오겠네.”(‘개구리’)
9월 막을 올린 국립극단의 가을마당 ‘아리스토파네스 3부작’ 공연 중 들리는 대사다. 극단 측이 밝힌 이 시리즈의 취지는 “고대 그리스 희극을 뼈대 삼아 한국의 작금 세태를 반영한 이야기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나 절묘한 풍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현재 공연 중인 ‘구름’은 원래 아들의 낭비벽으로 빚에 쪼들린 아버지가 자식을 아테네 학당에 보내 궤변술을 배우게 한다는 이야기다. 극의 줄기는 어느 정도 원작의 흐름을 따라간다. 하지만 크레용팝의 5기통 춤까지 동원한 과도한 퍼포먼스가 대사의 울림을 흩뜨린다. 100분 동안 수많은 이야기와 움직임이 눈앞에 펼쳐지지만, 극장 문을 나서며 남는 것은 ‘무엇을 보고 들은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다.
손신형 국립극단 프로듀서는 “많은 일과 말이 있으나 알맹이가 없는 세상을 그리는 것이 연출 의도”라고 말했다. 그 설명에 동의할 관객이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최근의 두 무대에 대한 이야기지만 연극계 안팎에서 적잖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그 주체가 국립극단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중 합작 ‘로미오와 줄리엣’, 삼국유사 시리즈 ‘꿈’과 ‘멸’ 등의 잇따른 성공으로 전회 매진을 거듭하며 국립극단은 관객으로부터 공고한 신뢰를 얻은 바 있다.
24일 오후 만난 손진책 예술총감독은 “어떤 내용이든 완성도를 갖춘 작품으로 다듬어지지 못한 ‘생짜’를 전하는 무대는 국립극단에 어울리지 않는다. 관객에게 부끄럽다”고 말했다. “‘개구리’ 박근형 연출과 준비 과정에서 나눈 대화와 결과물의 격차가 컸습니다. 현 시대의 문제를 죽은 정치인이 해결할 것이라는 발상…. 민망하고 실망스러웠습니다. 물론 연출자를 선정한 내 책임이 큽니다.”
‘구름’의 남인우 연출은 “시간적 문제가 작품의 질에 대한 변명거리가 될 수 없다. 자잘한 이야기가 너무 많이 나열됐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비판을 수용하며 작품을 정돈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자흥 국립극단 이사장은 “개성 뚜렷한 연출가들을 총감독 뜻대로 이끌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다음 작품의 분발을 위한 계기가 되리라 기대하고 싶다”고 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