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한국학 대부’ 마우리치오 리오토 나폴리동양학대 교수
한국을 방문한 마우리치오 리오토 교수가 서울 종로구 청계천을 찾았다. 고향인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한국인 부인, 아들과 함께 사는 그는 “집에서 김치를 담가 먹는데 물이 달라서인지 배추가 달라서인지 한국만큼 맛있지는 않다”며 웃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시칠리아 출신인 그는 팔레르모대에서 서양고고학으로 학사·석사 학위를 받은 뒤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국립 로마대에서 ‘한국의 청동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홍길동전’ ‘구운몽’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 다수의 한국 문학 작품을 이탈리아어로 번역했으며, 한국어 세계화에 기여한 공로로 2011년 한국 정부로부터 문화포장을 받았다.
리오토 교수를 최근 서울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시칠리아에서 한국인 아내, 아들과 함께 사는 그는 여름방학에 한국에 머물며 연구 자료를 수집하고 이화여대 서강대 동북아역사재단에서 강의한 뒤 막 귀국하려던 참이었다.
광고 로드중
“수이전 속 최치원 설화에서 그가 한을 품고 죽은 두 자매의 무덤 앞에 시를 지어 바치며 영혼을 위로합니다. ‘최치원전’에도 그가 마술을 부렸다는 내용이 전하고요.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 역시 마술을 부렸다는 전설이 있어요. 이처럼 대단한 두 문인이 마술사 설화를 남긴 배경이 뭔지 비교문화적으로 연구 중입니다.”
리오토 교수는 신라 화랑과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테베에 있던 특수부대 신성대(Sacred Band of Thebes)를 비교 연구하기도 했다. 남성 동성애자 150쌍으로 구성된 신성대는 사랑의 힘으로 단결해 최강의 전력을 냈다. 그는 “화랑이 동성애 집단이었다는 게 정설은 아니지만 여러 증거를 바탕으로 신성대와 비슷한 모습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가 한국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한 1980년대 이탈리아에는 그를 가르칠 교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공부하면 할수록 한국학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됐다. “한국은 서양사의 그리스와 비슷해요. 서구 문명이 메소포타미아에서 발생해 그리스를 거쳐 로마로 전파됐듯이, 한국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문화를 전했어요. 한반도를 빼 놓고는 동양사를 이해할 수 없죠.”
그가 교수를 시작한 1990년만 해도 이탈리아에 한국학 전공자는 2명뿐이었지만 지금은 500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가 2005년 이탈리아에서 펴낸 한국사 통사는 이탈리아 대학들에서 한국사 교재로 사용된다. 그가 키운 제자 4명이 현재 이탈리아에서 교수가 되어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다.
광고 로드중
그는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국 역사로 편입하려는 시도에 대해 크게 걱정했다. “이탈리아가 ‘프랑스 스페인 영국 그리스는 옛 로마제국의 영토였으니 돌려 달라’고 한다면 얼마나 이상합니까. 중국이 소수민족들의 땅을 차지해 온 것처럼 혹시라도 북한 지역을 자국 영토로 편입할까 봐 걱정입니다. 많은 한국인이 고대사를 제대로 공부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