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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고미석]고산의 길

입력 | 2013-09-18 03:00:00


6월 뉴욕타임스에 각 대학이 초청한 명사들의 졸업식 축사가 실렸다. 먹고살기 팍팍한 것은 어디든 마찬가지인지, 올해는 ‘위험을 감수하라’는 주문이 유독 많았다.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는 하버드대 졸업생에게 말했다. “실패란 없다. 다만 실패는 우리를 다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뿐이다.” 1997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스티븐 추는 로체스터대 졸업식에서 조언했다. “최선을 다했다면 실패해도 괜찮다. 빨리 실패하고, 재빨리 새로운 길로 나아가라. 어떻게 하는 것이 빨리 그리고 효율적으로 실패하는 것인가 묻는다면, 결코 쉬운 길을 선택하지 말라고 답하겠다.”

▷‘미완(未完)의 우주인’ 고산 씨(37)는 이런 말의 의미를 일찌감치 터득한 것 같다. 삼성종합기술원의 평범한 연구원이었던 그는 2007년 3만6000 대 1의 경쟁을 뚫고 ‘한국 최초의 우주인 후보’로 선발됐다. 서울대 복싱부 시절 전국아마추어대회에서 동메달 획득, 문리대 산악회 멤버로 7500m 고산 등반 등 자기가 좋아서 했던 도전들이 빛을 발했다. 한데 그는 러시아에서 막바지 훈련을 받다 최후의 문턱에서 고배를 들었다.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란 역사적 타이틀을 이소연 씨에게 넘긴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과학기술정책을 공부하겠다며 미국에 갔던 그는 1년 뒤 돌아와 비영리단체 ‘타이드 인스티튜트’를 세웠다. 국내 이공계 인재들의 ‘벤처 창업’을 돕기 위해서였다. 최근엔 3D프린터로 글로벌 창업에 직접 나섰다. 그제 미래창조과학부가 발표한 ‘글로벌 창업지원 사업’ 명단에 그가 만든 ‘A팀 벤처스’도 당당히 올라있다.

▷“취업은 언제 할 거니?” “좋은 데 취직해야지!” 어느 설문조사에서 대학생들이 추석 때 가장 듣기 싫은 말 1, 2위로 꼽은 말이다. 친척들의 잔소리는 젊은 피를 주눅 들게 한다. 그 참견이 도전하지 말고 안주하라는 것이라면 더욱 불편하다. 극작가 사뮈엘 베케트는 말했다. “다시 시작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라.” 고산의 길이 이 땅의 청년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된다면 좋겠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