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책 200권 번역 7권의 저서 펴낸 83세 김욱씨
칠순의 나이에 번역 일에 뛰어들어 10여 년간 200여 권을 번역하고 7권의 책을 써낸 김욱 씨(83)가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 신문박물관에서 자신이 쓴 ‘폭주노년’을 들고 섰다. 그는 “아흔다섯에 일을 관두고 일본 홋카이도에 건너가 일본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 꿈”이라고 호기롭게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순간 귀를 의심했다. 8월 30일 낮, 무더위가 한풀 꺾였다곤 하지만 서울 광화문은 한낮의 태양이 작열했고 기온이 30도에 육박했다. 몸무게가 50kg도 안 되는 깡마른 여든셋 어르신이 새파랗게 젊은 기자에게 낮술을 권한 것이다. 그는 “기력은 아무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했다. 목소리에는 ‘묘막살이’까지 하며 번역 200권, 저술 7권을 해낸 청춘이 묻어났다.
저술가 겸 번역가인 김욱 씨는 스물여덟 살 때 동화통신을 시작으로 30년간 신문기자 생활을 했다. 1980년대 중반 정년퇴직 후엔 한국생산성본부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편집위원으로 10년을 더 일했다. 그는 일흔을 앞두고 평생 모은 돈을 투자해 경기 화성의 시골마을에 전원주택을 지었다. 평생 소원하던 글이나 쓰며 살 요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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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문 끝에 경기 안산시 대부도 근처의 남양 홍씨 묘막에서 1년에 한 번 시제를 올리고 무덤을 관리하는 조건으로 농가주택을 공짜로 얻었어요. 교회 권사인 아내가 젯밥을 차릴 수 없다고 반대했지만 강행했습니다.”
그때부터 “죽은 자와 더불어 죽기 살기”로 번역에 매달렸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일본어에 능했고, 한때 신문사 신춘문예에 써 낸 단편소설이 최종심에 오를 정도로 글 솜씨도 있었다. 김 씨는 “가만히 있어선 누가 일감을 주지 않는다. 서울 대형 서점을 오가며 일본어 원서를 살펴보고, 출판사에서 관심을 갖겠다 싶으면 앞부분을 번역해 보냈다”고 했다. 출판계에서 빠른 속도로 매끄러운 번역을 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일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김 씨는 번역 일로 모은 돈으로 3년 만에 묘막살이를 끝냈다. 이후에도 일을 계속해 10여 년간 책 200여 권을 번역했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소설 ‘미스터리의 계보’와 ‘푸른 묘점’부터 ‘메이난제작소 이야기’ 같은 경영서까지 다양하다. 정확한 수입을 밝히지 않았지만 신문사 다닐 때만큼 번다고 했다.
올봄엔 그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폭주노년’을 펴냈고, 여름엔 ‘난세에는 영웅전을 읽어라’를 출간하는 등 지금까지 7권의 책을 썼다. 쉴 만도 한데, 이젠 본격적으로 책을 쓸 때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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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오래 앉아 있으면 피가 다리에 몰리니 그걸 풀어주려고 걷는 게 전부”라고 한다. “육체 건강만 챙기는데, 정신이 늙으면 몸이 늙는다. 나이 먹을수록 신문도 보고 세상에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나보다 우쭐거리는 친구를 보면 샘이 나서 꼭 따라잡고 싶어 계속 공부하는데, 그래서 늙을 새가 없다.”
그는 아흔다섯까지만 일할 계획이다. 그는 “그땐 ‘조금’ 늙었을 테니, ‘애썼다, 이제 좀 봐준다’며 몸을 쉬게 할 거다”라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는 아쉽다는 듯 술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그의 걸음걸이는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