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선 세상 떠난지 2년밖에 안된 ‘잡스’도 거침없이 묘사하는데…
‘잡스’의 주인공 애슈턴 커처는 외모뿐만 아니라 걸음걸이까지 잡스와 상당히 유사하다. 공누리픽쳐스 제공
○ 당대 인물 묘사에도 거침없는 할리우드
다음 달 영국에서 개봉하는 ‘다이애나’의 주인공 나오미 와츠. 공누리픽쳐스 제공
올해 아카데미 영화상에서는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을 그린 ‘링컨’이 12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주연배우 대니얼 데이루이스는 ‘링컨’을 포함해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세 번 안았는데 이는 아카데미 사상 최초의 기록이다. 영화는 링컨을 노예해방 법안 통과를 위해 정치적 술수도 마다하지 않는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내 호평을 받았다.
지난해 2월 국내 개봉한 ‘철의 여인’은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생전에 상영돼 화제를 모았다(대처는 올해 4월 8일 타계했다). 영화는 대처가 치매를 앓는 모습까지 담아 “생존 인물에 대해 묘사가 지나치다”는 논란을 불렀다. 대처 역의 메릴 스트립은 헤어스타일과 걸음걸이는 물론 말투까지 완벽하게 흉내 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2011년에는 메릴린 먼로를 소재로 한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의 배우 미셸 윌리엄스가 뛰어난 연기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아이언맨’의 히어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도 오랜 무명 시절을 거쳐 찰리 채플린의 전기 영화 ‘채플린’(1992년)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 전기, 한국에서는 껄끄러운 장르
전기 영화의 빈곤은 전기 문화의 빈곤과 일맥상통한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한국은 기록물의 가치에 대해 둔감한 사회”라며 “역사에 남을 만한 인물 중 일기를 남긴 경우가 많지 않다. 성공한 기업가들의 대필 자서전 정도가 전기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족이나 후손의 반발도 전기 영화가 나오지 못하는 이유다. 2005년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전기 영화가 아니지만, 10·26사건을 담아 박지만 씨로부터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았다. 한 제작사 대표는 “국내에서 이런 논란을 감수하고도 상업적 경쟁력이 검증되지 않은 전기 영화를 만들 제작자는 별로 없다. 인물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인정해주는 문화가 성숙해야 전기 영화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지난해 대선 전 개봉을 목표로 제작하던 ‘퍼스트레이디-그녀에게’는 아직 촬영에 들어가지 못했다. 육영수 여사를 다룬 이 영화는 육 여사 역에 한은정을 캐스팅했지만, 박 전 대통령 역을 맡을 배우를 뽑지 못했다. 제작사인 드라마뱅크 관계자는 “투자를 받지 못해 캐스팅을 확정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드라마 작가 이홍구가 시나리오를 쓰고 한창학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