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신시대 씁쓸한 풍속도
낌새가 이상해서 쫓아 들어갔으나 이미 남편이 메시지를 지운 뒤였다. ‘혹시 다른 여자가 있나’ 하고 의심한 신 씨는 인터넷에서 우연히 ‘삭제된 문자메시지나 카카오톡을 복구해준다’는 광고를 보게 됐다. 고민을 하다 이 업체에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업체 측은 “걱정 말라”며 남편의 스마트폰을 가져오는 법까지 자세히 일러주기 시작했다.
○ 사이버 흥신소 등장
삭제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복구해주는 ‘사이버 흥신소’가 최근 잇달아 등장했다. 주로 배우자의 불륜 증거나 바람피우는 이성친구의 ‘꼬리’를 잡길 원하는 사람이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업체들은 “위임장 등 몇 가지 서류를 준비하고 30만∼50만 원을 내면 통화목록, 일반 문자메시지, 카카오톡 메시지 등을 복구해 준다”며 인터넷에 광고를 내건다. 이 업체들의 고객문의 게시판에는 “딸이 삭제한 카카오톡 내용 좀 보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아내의 휴대전화 문자를 복구하고 싶다” 등의 글이 올라와 있다. 현재 SKT나 KT 등 이동통신사는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삭제된 데이터를 복구하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 데이터 복구 기술적으로 쉬워
정말 이런 업체를 통해 휴대전화 데이터를 복구하는 게 가능할까? 취재팀은 23일 고려대 로봇융합관에서 고려대 이상진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를 만나 직접 실험해봤다. 기자가 미리 친구와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모두 지운 뒤 스마트폰을 이 교수에게 건넸다.
이 교수는 휴대전화를 컴퓨터에 연결하고 일명 ‘루팅(Rooting)’이라 불리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보통 스마트폰에는 일반 사용자가 접근할 수 없는 운영체제나 숨겨진 데이터 등의 영역이 있다. 마치 프로그램 개발자처럼 이 영역에 마음대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루팅이다. 채 1분이 걸리지 않아 운영체제를 비롯해 모든 데이터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게 됐다. 이어 휴대전화에 담긴 데이터를 40여 분에 걸쳐 컴퓨터로 복사했다. 10분 뒤 삭제된 카카오톡 메시지가 모두 컴퓨터 화면에 나타났다. 모든 과정은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복구프로그램을 실행시키는 것만으로 자동으로 이뤄졌다. 이 교수는 “업체가 데이터를 복구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라고 말했다.
○ 개인정보 악용 위험
고객을 속여 돈을 뜯어내는 업자도 있다. 취재팀이 접촉한 한 업체는 “이혼 소송에 우리가 복구한 데이터를 증거로 쓰시려면 ‘법적 증거감정서’를 만드셔야 하는데 추가로 40만 원이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원에 알아본 결과 이는 거짓이었다. 법원 관계자는 “이혼에 필요한 모든 증거는 별도의 문서 없이 일단 재판부에 제출하면 된다”며 “법정 증거감정서를 따로 만들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업체는 “경찰이나 법원에서도 ‘오더(의뢰)’가 많이 들어온다”고 홍보하기도 했으나 경찰 관계자는 “휴대전화 압수수색을 맡는 공식 인력이 따로 있다. 이는 근거 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휴대전화 데이터 복구 자체는 현재 불법이 아니다. 하지만 휴대전화 소유자 본인의 동의 없이 복구하는 것은 개인정보보호법에 위배된다. 경찰 관계자는 “복구업자가 의뢰인에게 휴대전화 소유자의 주민등록등본이나 인감도장을 가져오도록 하는 것은 이런 법망을 피하기 위해서”라며 “나중에 배우자 간에 법정 싸움까지 가도 업체는 위임장을 이유로 대며 ‘몰래 가져온 것인 줄 몰랐다’며 발을 뺀다”고 말했다.
곽도영·이은택 기자 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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