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학이 찾아내는 그림 속 사람의 권리/문국진 지음/368쪽·2만5000원/예경
프란시스코 고야의 ‘옷을 입은 마하’. 예경 제공
고야는 그림의 모델이 ‘사랑했던 여인’이라고만 했을 뿐 끝내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고야에게 초상화를 의뢰했던 스페인 귀족 가문의 알바 공작부인이 그 주인공이라는 소문이 돌자 수치심을 느낀 알바 가문은 1954년 알바 공작부인의 유해를 발굴해 법의학자들에게 감정을 의뢰할 정도였다. 한편 당시 재상이던 마누엘 고도이가 이 작품의 최종 소장자였다는 이유로 고도이의 애인 페피타 투도가 주인공이라는 설도 있다.
한국 법의학의 개척자인 저자는 그림의 주인공이 투도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여러 그림에 등장하는 마하와 알바 공작부인, 투도의 얼굴을 각각 3차원으로 복원해 생체정보를 꼼꼼히 분석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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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유부녀 밧셰바를 탐내다 밧셰바의 남편을 최전방 군인으로 보내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건을 저자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미필적 고의’라고 말한다. 밧셰바를 소재로 한 여러 작품들은 그 사연을 듣고 보면 달리 보인다. 또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서 고대 그리스의 동성애 문화를 간파하고 성 소수자의 권리를 논한다. 반 고흐, 에곤 실레,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등 유명 화가들의 자화상을 통해 그들의 심리를 분석한 것도 흥미롭다.
저자는 이 책을 생애 마지막 저서라고 못 박았다지만 그렇지 않길 기대한다. 그림과 함께 법의학 이야기를 듣는 것도 충분히 재미있지만, 법의학에 대한 노학자의 식지 않는 호기심과 열정을 엿보고 감동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이미 제값을 다한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