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장편 ‘매구 할매’ 낸 송은일 작가
그곳에선 100명 가까운 70∼90대 할머니들이 ‘넓고 긴 방의 사면 벽에 등을 댄 채 한 무릎을 세우고’ 붙어 앉아 있었다. 마치 미라처럼 보이던 그 그로테스크한 모습에 송 씨는 전신에 소름이 쫙 돋았다고 한다. 송 씨가 인사를 하자 할머니들이 붙잡았다. “니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쓴담시롱야? 내 이약 잔 써주라(내 이야기 좀 써주라).”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관훈동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소설 ‘매구 할매’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송 씨를 만났다. 그는 “그때의 강렬한 기억이 소설을 쓰게 했다. 고향 마을도 언젠가 사라질 텐데, 한 시대가 가버리는 것 같았다. 우리네 할머니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했다. 매구란 천년 묵은 여우가 변한, 이상하고 신기한 짐승. 소설 속 매구는 간사한 구미호가 아니라 사람을 보살피는 큰 할머니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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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과 전쟁 통에 죽은 남편, 아들을 대신해 집안을 지킨 17대 종부 여례당 권씨가 액자소설의 중심인물이다. 남성을 대신해 가문의 전통을 지켜온 여장부들의 끈질긴 생명력이 소설 속에서 현실감 넘치게 펼쳐진다. 송 씨는 “액자 형식을 택한 이유도 과거 이야기를 살아 있는 현실로 보여주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송 씨는 2000년 여성동아에서 당선된 장편 ‘아스피린 두 알’을 시작으로 ‘매구 할매’까지 13년간 장편만 10편을 쓸 만큼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꼽힌다. 그는 “고향을 오가며 할머니들을 봤더니 어느새 내 몸 안에 할머니들이 들어와 있었다. 아는 이야기를 쓰니 억지로 쥐어짜내지 않고 술술 편안하게 썼다”고 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