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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칼럼]그들만 알고 있던 문재인의 問題

입력 | 2013-08-01 03:00:00

국정원 대화록 못믿겠다며 국가기록원 까자더니 대화록 없자 태도 표변
조명균 이야기도 안 듣고 민주당까지 망신시킨 경솔함
임기 몇 달 남지 않은 대통령 정상회담 말아야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문재인 의원은 국가기록원에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존재한다고 철석같이 믿은 나머지 “정치생명을 걸고” 대화록 원본 공개라는 초강수를 던졌던 것 같다. 그는 국가정보원 대화록의 왜곡 또는 조작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진실규명을 위해 당연히 국가기록원에 있는 정본 또는 원본을 열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자 2007년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이 이렇게 세게 나가는 바람에 민주당도 국가기록원 대화록 열람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국회 재적 3분의 2 표결을 통해 국가기록원에 들어가 봤지만 대화록은 종이문서나 디지털, 어떤 형태로도 남아 있지 않았다. 처음부터 넘어가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맞다.

국가기록원에 대화록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자 문 의원은 “국민에게 민망한 일”이라며 NLL(북방한계선) 논란 질질 끌지 말고 이젠 끝내자”고 표변했다. 그는 “국정원이 공개한 대화록에 의하더라도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이) NLL 포기가 아니라는 게 다수 국민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국정원 대화록의 조작 및 왜곡 가능성을 말하던 것과는 딴판이다.

왜 이렇게 바뀌었을까. 노무현 청와대에서 대화록은 문 비서실장이 아니라 백종천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소관이었다. 당시 경위를 충분히 알아보지도 않고 벌컥 내질렀다가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이제 끝내자”고 한 것이라면 매우 경솔했다. 문 의원이 뒤늦게 청와대의 대화록 담당이었던 조명균 전 안보정책비서관이나 김만복 전 국정원장과 통화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문 의원이 국가기록원 대화록을 까자고 제안하기 전에 이야기를 들어봤어야 할 사람들이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따르면 모든 종이문서는 전자화하게 돼 있다. 그러나 비서관들이 노 전 대통령에게 종이문서를 보고해놓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전자화하지 않은 경우도 더러 있었다고 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인사들은 증언한다. 특히 국정원은 중요한 보고도 종이문서로만 하고 전자파일을 첨부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고 한다. 종이문서의 경우 불법 복사를 하면 복사기의 종류까지 파악할 수 있지만 전자파일은 아무 컴퓨터에나 넣고 복사를 해도 흔적이 남지 않기 때문에 복사자를 찾아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그렇다면 청와대에 보고된 종이문서 대화록은 어디로 갔을까. 노무현 청와대에서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이 문서를 없애라고 지시했을 가능성은 없다. 국정원에도 대화록이 남아 있고, 북한도 녹음된 것을 갖고 있을 것이 확실한데 삭제 지시를 할 이유가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북한 것은 어차피 이쪽에서 확인이 불가능하다. 청와대가 보고 받은 대화록만 없애고, 국정원이 2008년 1월 생산한 대화록 최종본은 정권교체기에 미처 폐기할 겨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미스터리는 검찰 수사를 통해서 풀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새누리당이 국가기록원 대화록을 까자고 해도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는 나라와 누가 정상회담을 하겠느냐’며 문 의원이 앞장서서 말렸어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에서 문 비서실장을 지켜본 한 인사는 “중요한 회의에서도 문 후보는 입을 잘 열지 않았다. 이웃집 아저씨처럼 사람 좋고 과묵한 성품이지만 큰물을 품을 호수는 아니다”며 전략적 사고의 부재를 탓했다. 친노 그룹들은 문 의원의 문제(問題)를 너무 잘 알고 있었으나 단기간에 문 의원이 대선 후보로 뜨는 과정에서는 용케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다.

문 의원과 함께 유이(唯二)의 부산 출신 민주당 의원인 조경태 의원은 문 의원을 향해 “국민과 민주당원 앞에 정중히 사과하고 한 말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길 엄중히 촉구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조경태 의원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영남에서 민주당 간판을 걸고 유일하게 당선된 이후로 3선이다. 그런데도 친노와 문 의원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됐다. 문 의원의 정치적 포용력의 한계가 조 의원을 반문(反文)으로 만들었다. 문 의원의 포용력 부족은 대통령 후보가 된 뒤 국립현충원을 찾아 대통령 묘역에서 편가르기 참배를 한 것이나 노 전 대통령을 흉내 낸 언론 대응에서도 드러났다.

문 의원이 해석론이나 의리 차원에서 노 전 대통령이 NLL을 양보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는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 ‘10·4선언에서 명기된 평화수역 설정 문제는 NLL의 불법성을 전제로 한 북남 합의조치’라는 성명이 나온 것은 노 전 대통령의 책임임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이번 파문에서 세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첫째, 임기 몇 달 남겨두지 않은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해서는 안 된다. 둘째, 문 의원과 그를 둘러싼 친노 그룹이 어떤 정치적 미래를 구상하는지 몰라도 그들에게 끌려다니다간 민주당의 앞날이 어둡다. 셋째, 대통령 후보는 정치판에서 충분히 검증을 거친 사람이라야 한다.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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