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야구란 무엇인가’ 낸 김경욱
신작 ‘야구란 무엇인가’를 발표한 소설가 김경욱. 문학동네 제공
“고향이 광주라서 어려서부터 (광주가 연고지인) 해태 타이거즈의 팬이었어요. 그런데 아세요? 타이거즈 팬은 경기 막판에 늘 ‘목포의 눈물’을 응원곡으로 불러요. 지는 경기는 물론이고 이기고 있는 경기에서도요. 나중에 알았죠. 그 노래가 타이거즈에 투영된 광주의 한(恨)이란 사실을요.”
소설 속 주인공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계엄군으로 내려온 ‘염소’의 손에 남동생을 잃은 인물이다. 죽은 자식을 가슴에 묻은 아버지는 타이거즈 경기 중계를 보는 것을 위안으로 삼다 일찌감치 화병으로 세상을 떴고, 주인공의 아내는 아들 진구를 낳아놓고 집을 나갔다. 대신 진구를 키워주던 어머니마저 심장병으로 급사하자 주인공은 이 모든 고통의 원흉인 염소를 제거할 계획으로 집을 나선다. 염소를 찌를 칼과 복수가 끝나면 자신의 목숨을 끊을 때 쓸 청산가리를 주머니에 넣은 채로.
9회까지 진행되는 야구 경기처럼 총 9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에서, 광주(홈)를 출발해 전주(1루)와 군산(2루)을 거친 부자(父子)는 마침내 서울(3루)에서 염소와 맞닥뜨리게 된다. 하지만 현재 염소의 상황은 분노보다 연민이나 동정이 어울리는 모습이다. “소설을 쓰는 내내 계속 생각했어요. 복수를 마치면 사내의 분노가 풀릴지, 사내가 짊어진 삶의 무게가 가벼워질지에 대해서요. 그에겐 자기가 없으면 아무도 돌봐줄 이 없는 아들이 있잖아요.”
하지만 작가는 이런 설정을 용서나 화해로 섣부르게 해석하는 것은 거부했다. “가해자의 진심에서 우러난 사과 없이 용서나 화해가 가능할까요? 광주에 큰 빚을 지고 있는 민주화의 열매를 누리며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도 광주의 진실을 잊지 않고 기억할 책임이 있지 않을까요? 그게 이 소설을 쓰게 된 이유입니다.” 이 소설의 9번째 장, 애초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 3루까지 온 이 부자의 다음 행선지는 ‘야구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이 진즉부터 암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야구란 결국 “무사히, 살아서 집(홈)에 돌아가는” 것이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