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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사 사옥서 올해초 4일간 미술품 포장… 트럭에 싣고가”

입력 | 2013-07-19 03:00:00

[전두환 일가 재산압류]
■ 파주 근무 직원 증언… 미리 빼돌린 정황




미술품 보관됐던 직원 숙소 경기 파주시 탄현면 오금리에 있는 출판업체 리브로의 직원용 숙소로 쓰이는 다가구주택. 주변은 대부분 소규모 공장들과 출판사들의 물류창고가 있고 주택으로는 이 건물이 유일했다. 파주=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경기 파주시 탄현면. 파주시내에서 차로 40분 거리의 외딴 지역이다. 출판사 물류창고와 영세 철제가공 공장들이 밀집한 곳으로 근로자들이 퇴근하는 오후 5시 반 이후에는 인적이 드물다.

18일 찾은 탄현면 오금리 137에는 3층짜리 다가구 원룸주택이 하나 덜렁 있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 씨가 소유한 시공사의 도서판매 계열사인 리브로의 기숙사로 지어진 곳이다. 그런데 16일 검찰 압수수색 때 이 원룸주택의 한 방에서 그림액자와 병풍, 도자기 등 155점이 쏟아져 나왔다. 미술품이 정식 보관창고가 아니라 기숙사 용도로 지은 외딴 곳의 낡은 건물에 은밀히 보관돼 있었다는 것은 재국 씨가 이곳에 재산은닉을 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는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재국 씨는 경기 연천군 허브빌리지에도 30여 점의 미술품 불상 공예품 등을 보관해놓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 초호화 집무실을 꾸며놓고 각종 미술품으로 실내를 장식했다. 이 밖에도 경기 오산시 근처에 있는 전 전 대통령 외가 친척의 토지 부근에도 미술품 수장고가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민주당 신경민 최고위원은 지난달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오산 근처에 천문학적인 규모, 국내외 화가들이 그린 명화들이 있는 (재국 씨의) 수장고가 있다고 한다”며 “1990년대부터 재국 씨의 대리인을 행사해온 한모, 전모란 사람이 화랑을 돌아다니며 명화 컬렉션을 했다는 얘기가 미술계에서는 오래전부터 파다했다”고 말했다.

재국 씨가 시공사 사옥과 허브빌리지 집무실, 계열사 기숙사 등 곳곳에 미술품을 보관해온 점으로 볼 때 전씨 일가가 수도권 곳곳에 비밀 수장고를 두고 재산 은닉 수단으로 미술품을 조직적으로 활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전재국씨 미술품 줄줄이 압수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압수수색 사흘째인 18일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 씨 소유인 출판사 시공사의 지하창고에서 압수한 미술품들을 인부들이 트럭으로 운반하고 있다. 파주=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 ‘판도라의 상자’처럼 한 방에서만 155점 나와

리브로의 기숙사로 지어진 3층짜리 다가구주택은 반경 500m 이내의 유일한 주거용 건물이었다. 건물로 들어서자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1층 원룸 몇 채는 문이 열려 있었고, 내부 벽은 곰팡이가 슬어 검고 축축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복도는 모기와 거미가 득실거렸다. 원룸 19채가 들어서 있지만 대부분의 원룸은 사람이 살지 않는 듯 잠겨 있었다.

2층 오른쪽 끝에 있는 204호가 16일 압수수색 당시 검찰 수사관들조차 놀란 ‘판도라의 상자’였다. 33m²(10평)도 안 되는 공간이 미술품 155점으로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히 차 있었다. 당시 미술품을 날랐던 이삿짐센터 직원은 18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직원 3명이 2시간을 꼬박 날라 5t 트럭의 적재함에 3t가량이 찼다. 압수수색에 참여했던 한 수사관은 ‘누가 훔쳐가도 모르겠네’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그만큼 외딴 곳에 많은 미술품이 은닉돼 있었다는 것이다.

이 원룸주택은 처음 지어진 2003년 11월부터 리브로의 김경수 대표 소유였다. 김 대표는 재국 씨가 연세대 경영학과에 편입하기 전에 다니던 성균관대 79학번 동기로 알려져 있다. 인근 공인중개업체 관계자는 “리브로 직원용 기숙사지만 인근 공장 근로자들도 보증금 500만 원에 30만 원 정도의 월 임차료를 내고 숙소로 이용한 적이 있다”면서도 “최근에는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았다”고 전했다.

○ “올해 초 4일간 포장 작업 이뤄져”

이날 재국 씨가 소유하고 있는 출판사 시공사의 파주 사옥에서는 이미 올 초 미술품이 대규모로 빼돌려졌음을 시사하는 증언이 나왔다.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몇 달 전 큰 불상 하나가 이곳으로 온 것을 봤는데 오늘 압수수색에서 나오지 않은 것을 보면 (이 불상이) 나도 모르게 다른 곳으로 옮겨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초 지하 1층에서 4일간 포장작업이 이뤄졌고 오늘 온 트럭(5t)보다 훨씬 큰 트럭에 실려나간 적이 있다”며 “운전사에게 물어보니 ‘대통령전시관으로 간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날 이 사옥에서는 검찰의 미술품 반출 작업이 진행됐다. 그림 280점과 조각 3점이 압수돼 반출됐다. 이 미술품들은 지하 1층에 보관돼 있다 오전 9시경 엘리베이터와 계단을 통해 1층 로비로 옮겨졌다. 2시간이 지나자 165m²(약 50평) 남짓한 로비 공간이 미술품으로 가득 찼다.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사옥 앞에 대기하던 5t짜리 무진동 트럭에 싣기 위해 미술품을 들고 나오자 출판사 관계자와 취재진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꽃과 동그라미, 해태상 등이 그려진 각종 회화 작품이 줄줄이 나왔다. 일부 그림 포장에는 ‘서양화 권이현’ ‘박여숙 갤러리’라는 라벨이 붙어 있었다. 이삿짐센터 직원은 “돌하르방과 동(銅) 재질의 조각 작품 등도 3점이 있었다”고 전했다. 또 한 직원은 “그동안 지하 1층에는 관리인조차 접근할 수 없었다”며 “이렇게 어마어마한 공간에 미술품이 가득 보관돼 있을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시공사에서 압수수색된 미술품은 이날 오후 2시경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 미술품은 검찰 수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박물관 사무동 1층 수장고에 보관된다.

파주=백연상·김성모 기자 bae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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