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권 한국재정학회장 한국경제연구원 사회통합센터 소장
정치적으로 대립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적당히 타협하려는 경향도 짙다. 이를테면 통상임금 조정안, 의료산업 규제 완화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은 가급적 건드리지 않고 피해가면서 쉬운 것들만 먼저 하려는 경향도 강하다는 지적이 많다.
과거 개발시대에 경제부총리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경제발전을 이끌어왔다. 경제논리에 충실한 경제정책을 펴기만 하면 되던 시대였다. 그러나 이제 시대는 변했다. 경제정책이 경제논리가 아닌, 어떻게 보면 정치논리에 의해 결정되는 세상이다. 정치논리는 단순 명료하다. 정치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정책안이면 뭐든 좋다. 경제논리로 보면, 터무니없는 안이지만, 정치논리로 보면 현실정책이 된다. 그러나 확실한 역사적 사실은 경제논리와 정치논리가 충돌할 때, 정치논리가 우선하면, 국가경제는 망가진다. 그리스 등 재정위기를 겪는 남유럽 국가들이 좋은 예다.
경제부총리는 정치인이 아닌, 관료 출신의 경제전문가다. 정치논리가 앞서는 현실에서 경제논리로 무장한 경제부총리는 태생적으로 역할의 한계를 가진다. 예를 들어 서비스산업 대책에 대한 기본방향은 발표했지만, 투자개방형 의료영리법인 등 민감한 방안들은 미루었다. 이 부분은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이 갈리고 분위기에 편승한 정치권이 경제논리를 무참히 억압할 수도 있기 때문에 당장 처리하기가 힘든 게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이런 정치구조 속에서 사실상 경제논리로 무장한 경제부총리가 할 일은 별로 없다.
그러나 이 시대, 경제부총리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경제부총리는 실은 대단한 자리다. 현재 처한 상황이 경제논리로 경제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지만, 경제부총리의 한마디는 경제정책 방향의 지침서다. 경제민주화라는 혼동의 언어들이 우리 사회의 주된 화두가 되었을 때, 이 폐단을 지적하고 감성 치우침의 사회분위기를 바로잡을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경제부총리의 경제논리는 바로 현실정책으로 이어질 수 없지만, 여론을 움직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한국경제의 환경도 그리 밝지 않은 상태에서 각 부처의 입장이 아니라 한국경제 전체를 위한 경제논리를 정리해서 추진해야 한다. 정치권과는 불편한 관계를 가지겠지만, 한국경제의 미래를 발목 잡는 감성적 광풍에는 분명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정치논리에서 여야의 차이가 없고, 경제정책이 몇 가지 감성적 슬로건으로 입법화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대로 가면 한국의 미래가 어둡다.
현진권 한국재정학회장 한국경제연구원 사회통합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