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선 문화부 기자
이 책의 해제에 제시된 한국의 현실도 다르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멕시코 스위스 미국에 이어 네 번째로 ‘빈곤 격차’(중위소득과 빈곤층의 평균소득 차이)가 큰 나라다.
최근 우리 사회의 ‘갑을(甲乙) 논쟁’은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겪으며 심화된 불평등에 대한 ‘을’의 아우성으로 들린다. 박근혜정부가 경제민주화를 4대 국정기조 중 하나로 정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일 것이다.
영화계의 먹이사슬은 다음과 같다. 맨 위에 ‘슈퍼 갑’인 극장이 있다. 그 아래 CJ E&M, 롯데엔터테인먼트, 쇼박스 등 투자배급사들이 ‘갑’에 해당한다. 이들에게 투자금을 받아 영화를 만드는 제작사는 ‘을’이다.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에는 촬영 현장의 스태프가 있다. 지난해 전국영화산업노조의 ‘근로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촬영 조명 미술 등 현장 막내 스태프의 연평균 소득은 416만 원에 불과했다. 한 제작사 대표는 “저임금 때문에 요즘 영화에 인재가 몰리지 않는다”며 “스태프의 수준이 예전보다 떨어졌다”고 걱정했다.
영화 마니아라면 한 번쯤 꿈꾸는 감독도 ‘을’이기는 마찬가지다. 남자 톱스타의 출연료는 4억∼6억 원. 하지만 몇몇 스타 감독을 제외하면 감독들은 연출 대가로 대개 2억 원 미만을 받는다. 대개는 잘해야 2, 3년에 영화 한 편을 연출하니 형편이 넉넉지 않다. 감독들은 좁아진 입지를 회복하기 위해 4월 1일 사단법인 한국영화감독조합을 출범시켰다.
최근 만난 한 영화감독은 전작 몇 편이 흥행에 실패해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다고 했다. 그는 “감독을 하겠다는 젊은이가 있으면 짐 싸들고 다니면서 말리고 싶다”고 말했다.
올여름 한국 영화는 유례없는 대작이 나오고 있다. 17일 개봉하는 ‘미스터 고’는 제작비가 225억 원이다. 내달 개봉하는 ‘설국열차’는 455억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지난해부터 한국 영화는 관객이 늘며 호황을 맞고 있다. 그러는 사이 불평등의 대가는 한국 영화의 경쟁력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