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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지학순 주교, ‘육영수 여사는 대통령감’”

입력 | 2013-07-09 03:00:00

[허문명 기자가 쓰는 ‘김지하와 그의 시대’]<64>육영수 여사 서거




1974년 8월 15일 오전 10시 6분 광복절 기념식이 열리는 서울 남산 국립극장에 들어서 관중의 박수에 답례하는 대통령 내외. 그 후 20여 분 뒤에 육영수 여사가 총탄에 맞아 숨진다. 동아일보DB

지학순 주교가 연행돼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은 3일 뒤인 1974년 8월 15일은 광복 29주년 기념일이었다. 이날 오전 10시 6분 남산 국립극장.

박정희 대통령 내외의 입장을 알리는 장내 방송과 함께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무대 오른쪽에서 나오자 모두 기립해 박수로 맞았다. 박 대통령은 오른손을 들어 박수에 답례했고 오렌지색 한복을 입은 육 여사는 활짝 웃음을 머금고 목례했다.

10시 13분. 대통령이 연설대 앞으로 나와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로 경축사를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10분 뒤인 10시 23분. 청중의 눈과 귀가 모두 대통령에게 쏠려 있는데 관객석 뒤쪽 해외 교포석 끝에서 검은색 양복에 안경 쓴 괴청년이 불쑥 일어났다. 그는 무대 쪽 복도로 5m가량 뛰어나가더니 무대를 향해 오른손을 들었다. 권총이 들려 있었다. ‘타앙 탕’ 하는 금속성 두 발이 장내를 뒤흔들었다. 범인은 다시 15도가량 경사진 통로를 17∼18m가량 뛰어 내려가 오케스트라석 앞까지 이르렀다. 순간 대통령은 연단 뒤로 몸을 숙여 피했다. 그러자 범인은 연단 왼쪽에 꼿꼿이 앉아 있던 육 여사를 향해 두 발을 쏘았다. 육 여사가 좌석에 앉은 채 고개를 오른쪽으로 떨궜다. 대통령이 있는 방향이었다.

이날 총소리가 나자마자 무대 뒤에서 달려 나와 문세광을 향해 정조준하는 모습이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실렸던 박상범 전 대통령경호실장은 2011년 10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날 그 순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커튼 뒤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땅’ 하는 소리가 들려 바로 튀어 나갔지요. 문세광이 무대 쪽으로 총을 쏘며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각하께서 연설대 밑으로 피하는 동시에 앞으로 튀어 나간 저에게 ‘우리 내자는 괜찮으냐’고 물었습니다. 당시 공개된 사진 중에 제가 정조준 상태에서 왼쪽으로 고개를 휙 돌린 사진이 있는데 각하의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여사가 계신 쪽을 돌아본 모습이 찍힌 겁니다. 여사는 이미 총에 맞아 고개를 떨군 상태였습니다. 문세광은 현장에서 검거됐습니다. 이 모든 일이 불과 3∼4초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육 여사가 쓰러지고 2분 뒤 문세광이 경호원들에게 양팔과 양다리를 들린 채 밖으로 끌려 나갔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박 대통령이 다시 연설대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는 보리차를 한잔 마신 뒤 청중을 바라봤다. 충격에 휩싸였던 객석에서 박수갈채와 “대통령 만세” 소리가 터져 나왔다. 잠시 후 조용해지자 대통령은 손을 들어 답례하고 “하던 이야기를 계속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10시 33분. 박 대통령은 기념사를 모두 마치고 여학생 합창단의 광복절 노래와 폐회 선언까지 기다린 뒤 박수갈채에 손을 두세 번 들어 답하면서 극장을 떠나 곧 육 여사가 응급가료 중인 서울대 부속병원으로 달려갔다.

당시 청와대 대변인을 지냈던 김성진 씨는 회고록 ‘한국 정치 100년을 말한다’에서 “자신을 겨눈 총탄이 부인을 쓰러뜨리는 장면을 연설대 밑에서 숨어 지켜본 뒤 다시 소란해진 장내를 가라앉히고 나서 그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경축사를 끝까지 계속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저분은 사명감의 불사조구나’ 하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범인 문세광은 23세의 재일 한국인이었다. 본적은 경남 진양군 대평면 산촌리 3-24, 살고 있는 곳은 일본 오사카. 여권은 일본인 요시이 이름으로 된 것이었고 비자는 관광비자였다.

대통령저격사건수사본부는 며칠 뒤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문세광이 조총련계 재일교포로 북괴 공작선 만경봉호에 승선했을 때 북괴 공작지도원으로부터 ‘박 대통령 저격사업은 김일성 주석이 직접 지시한 사업이니 생명을 걸고 성공시키라’는 지령을 받았다”고 밝혔다(동아일보 8월 23일자).

김수환 추기경도 비통과 충격에 휩싸인다. 그는 회고록에서 “육 여사가 수술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대세(代洗·가톨릭에서 사제를 대신해 예식을 생략하고 세례를 주는 일)라도 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날 경축연회장에서 만난 김종필 국무총리에게 ‘주선해달라’고 부탁했다. 김 총리가 상황을 알아보고 돌아와서는 ‘수술 중이라 접근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결국 육 여사는 깨어나지 못하고 49세 나이로 유언 한마디 없이 오후 7시에 운명한다.

여사의 시신이 옮겨진 청와대의 모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비통함으로 가득했다. 다시 김성진 전 대변인의 회고다.

“박 대통령은 조문객들이 있는 곳에서는 의식적으로 슬픈 표정을 짓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러면서 혼잣말처럼 나직하게 심경을 털어놓았다. ‘항상 앞서 걷는 나에게 혼자서 먼저 가지 말고 같이 가자고 얘기하던 그 사람이 나보다 먼저 혼자서 갈 줄은 참으로 몰랐다. 지금도 그 사람이 두 손을 내밀며 ‘이 손 좀 잡아 보세요. 나병 환자들과 악수한 손이에요’ 하며 저 문으로 들어서는 것만 같다’…문상객들의 발길이 거의 끊기고 비서관들과 정부 측 인사 몇 명만이 남아 접견실에서 밤샘을 하고 있으려면 밤마다 안쪽에서 마치 호랑이 울부짖음을 방불케 하는 통곡소리가 들려왔다. 박 대통령이 여사의 시신 앞에서 홀로 목 놓아 우는 소리였다.”

전국에 애도와 추모 물결이 휩쓸었다. 할머니와 부녀자들은 분향소에 와서 엎드려 마치 가족이라도 죽은 듯 애통해했다. 이틀 만에 일반 조문객 수는 10만 명을 넘어섰다. 전국 도청마다 마련된 분향소에도 지방 조문객들이 몰려들었다. 이런 추모 물결은 1975, 76년까지 이어진다. 여사가 숨진 지 2년이 지난 76년 7월 3일에는 묘소를 참배한 인원이 1000만 명을 넘어섰다.

김지하는 최근 기자에게 육 여사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김수환 추기경, 지학순 주교로부터 똑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육 여사가 대통령감’이라는 거였다. ‘왜냐’고 여쭸더니 육 여사가 두 분을 각각 만났을 때 이렇게 묻더란다. ‘박 대통령의 가장 큰 오류가 뭡니까.’ 추기경이나 지 주교나 답을 않고 가만히 있었더니 육 여사가 다시 이렇게 되묻더란다. ‘첫째 친일파, 둘째 빨갱이(남편의 남로당 경력을 말한다), 셋째 친미파라는 거죠?’ 한마디로 시중에서 말하는 박 대통령에 대한 비난을 먼저 지적하면서 두 사람에게 ‘대통령 좀 봐달라’ 그 이야기였다. 그런 육 여사를 보고 두 분 다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 거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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