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gress 아니고 Convention” 통역 잘못 즉석 수정영어발음 ‘또박또박 토종’이지만 고급 어휘로 정확히 의미전달평소 영자신문 보며 닦은 실력
박근혜 대통령이 5월 8일(현지 시간) 영어로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을 하고 있다. 박 대통령 특유의 또박또박한 어조는 미 의원들의 시선을 미리 배포된 연설문 대신 대통령에게 향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 박 대통령은 당시 발음보다 어휘와 표현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한다. 동아일보DB
박 대통령 자신도 중국어 연설을 잘 해낼 수 있을지 내심 걱정했다는 후문이다. 시간이 부족해 연습을 충분히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칭화대 강연에서 첫머리와 마무리를 특유의 또박또박 발음으로 잘 소화해 내자 참모들은 속으로 환호했다.
이희옥 성균관대 중국연구소장(정치외교학과 교수)은 “유창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번 방중 과정에서 많은 중국인에게 ‘징시(驚喜·뜻밖의 기쁨)’를 안겨줄 정도의 수준급 중국어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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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음은 토종이지만 어휘는 최고급?
박 대통령 스스로도 영어엔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게 참모들의 전언이다. 실제 박 대통령의 영어 표현은 영국 상류층이 사용하는 ‘귀족 영어’라는 평가를 받는다. 발음 자체는 원어민처럼 유창하지 못해 ‘토종’으로 들리지만 딱딱 끊어서 말하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을 정확히 전달하는 데는 훨씬 유리하다고 한다. 대통령의 한 참모는 “미 의회 연설 때 유심히 보면 의원들이 미리 배포된 연설문이 아니라 고개를 들고 박 대통령을 보며 연설을 듣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며 “또박또박 발음해 연설문을 보지 않아도 명확하게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영어 실력은 고급 어휘와 표현에서 더 발휘된다고 한다. 3월 25일 청와대 접견에서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이 “북한이 동맹(한국)을 공격하면 미국은 반드시 군사 대응을 할 거라고 의회에서 강조했다”고 얘기하자 박 대통령은 “Did the message get across to them?(북한이 그걸 제대로 이해했나요?)”라고 영어로 물었다고 한다. 같은 의미를 사용할 때 회화에서 흔히 쓰는 “Did they get the message?”나 “Did they understand?”보다 한층 세련된 표현이라고 한다.
박 대통령은 4월 주한 독일대사를 접견한 자리에서 지난해 당 경선에서 후보로 선출됐을 때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서한을 보내준 데 대해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그때 통역이 당 전당대회를 ‘Party Congress’라고 표현하자 박 대통령은 직접 영어로 ‘Party Convention’이 맞다면서 “There is a big difference between a Party Congress and a Party Convention(두 표현에는 차이가 있다)”이라고 바로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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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선 때 경남대 영어학과 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학생들 대부분이 여학생인 것을 보고 “영어학과는 여학생이 강한 것 같다. 남학생에게 할당제를 줘야겠는데…. 그 뭐더라, 영어학과로 오니까 한국어가 생각이 안 나네요”라고 했다. 학생들이 “그냥 영어로 하세요”라고 하자 “affirmative action”이라고 답했다. 이는 1960년대 베트남 전쟁 이후 미국이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인 우대조치를 도입한 것을 뜻하는 말로 이 학과에서는 남자가 약자라는 우스갯소리를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중국 베이징 칭화대에서 중국어로 강연을 하고 있다. 중국중앙(CC)TV는 “박 대통령은 비록 말이 빠르지 않았지만 발음은 정확했다”고 평가했다. 동아일보DB
박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중국 국빈만찬 때 공연자들과 악수를 하면서 중국어로 “演出眞棒(공연이 훌륭했다)”이라며 격려했다. 2006년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주재한 만찬에선 역시 중국어로 “爲中韓兩國的友好乾杯!”라고 건배사를 했다. 한국말로 번역하면 ‘한국과 중국의 우호 증진을 위해 건배’라는 뜻이다.
프랑스어와 스페인어의 경우도 간단한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다. 박 대통령은 외국 인사들과의 접견 때 주로 사용한다. 2월 피오라소 프랑스 고등교육연구부 장관을 접견했을 때 박 대통령은 자리를 권할 때 회화로 쓰는 “Asseyez-vous” 대신 격식을 갖춘 “Veuillez vous asseoir(어서 앉으시지요)”라고 표현했다. 에스피노사 페루 제1부통령과 2월 접견 때 박 대통령은 스페인어로 “Muchas Gracias”(매우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페루 측 인사들이 놀란 표정을 짓자 박 대통령은 “Hablo un poco espa~nol”(제가 스페인어를 조금 할 줄 안다)고 대답해 참석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고도 한다. 민주당 문희상 의원은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해외 국감 때 함께 스페인을 갔는데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며 웨이터와 스페인어로 얘기하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때 보니 우아하고 진짜 공주 같더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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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의 외국 생활 경험은 프랑스 유학 시절 몇 개월이 전부다. 영어권이나 중국어권 국가에서는 생활해 본 적도 없다. 그런데도 4개 외국어 구사가 가능한 데는 조기 영어 교육과 박 대통령의 빠른 언어 습득 능력, 외국어 공부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등 3박자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박 대통령은 자서전에 “어린 시절 청와대에 살면서 미국인 교사에게 과외를 받았고 프랑스어는 대학 졸업 후 프랑스로 유학을 가면서 배웠다”고 적었다.
박 대통령은 1974년 2월 서강대를 졸업한 뒤 프랑스 그르노블대로 유학을 갔다. 어머니인 고 육영수 여사가 총탄에 맞아 사망하면서 6개월 만에 귀국했지만 박 대통령은 당시 평범한 프랑스 가정집에서 민박하며 자유롭게 여행했던 시절을 가끔 좋은 추억으로 회상하곤 한다. 민박집에서 머물다 보니 현지어인 프랑스어를 익히는 데도 도움이 많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한 측근은 “박 대통령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1970년대 후반은 우리나라와 아프리카 국가 사이의 수교가 많았고 또 중요했다”면서 “아프리카 국가들은 프랑스어를 쓰는 경우가 많아 유용하게 썼고 프랑스어 구사 수준을 일정 이상 유지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타고 다니는 차에는 한결같이 영어 사전이 놓여 있다. 특히 외국에 나갈 때는 늘 사전을 곁에 두고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즉석에서 찾는다는 것. 다른 측근은 “우리나라에서 고급 영어를 가장 잘 구사한다고 평가받는 고려대 한승주 명예교수(전 외교부 장관, 전 주미대사)도 늘 사전을 갖고 다니며 모르는 단어를 찾는다고 들었다”며 “박 대통령은 단어뿐 아니라 표현에 있어서도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꼭 확인하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전 삼성동 자택에서 코리아헤럴드와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 등 영자신문 몇 개를 정기 구독하며 아침마다 읽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은 영자신문 내용 가운데 특히 칼럼을 즐겨 봤다고 한다. 시간이 날 때 CNN과 같은 외국 뉴스도 즐겨 보는 편이다. 또 외국 인사와 만날 일이 많기 때문에 자연스레 영어는 꾸준히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중국어 실력은 1990년대 한창 열심히 공부했을 때보다는 다소 떨어졌다고 한다. 박 대통령 스스로도 주변에 “쓰지 않으니까 중국어를 자꾸 잊는다”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박 대통령은 중국어를 1990년대 정치권 입문 전에 EBS로 5년 이상 독학했다고 여러 차례 말한 적이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EBS 직원과 만난 자리에서 “교재를 사다가 밑줄을 쳐가면서 아침마다 들었다. 특히 프로그램을 통해 선생님 발음을 들으며 익혔는데 중국에 가서 지도층과 대화하니까 발음이 좋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중국어를 EBS뿐 아니라 여러 테이프를 구입해 반복해서 들으며 익힌 것으로 알려졌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직접 학원을 다닐 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며 “외국어를 익히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에필로그
박 대통령이 구사하는 4개 외국어를 활용하면 거의 전 세계에서 소통이 가능하다. 북미, 유럽, 호주 등 영어권 외에 프랑스와 아프리카 등 프랑스어권, 스페인과 남미 등 스페인어권에 중국까지 커버된다. 임기 내내 전 세계 어디를 가든 현지어를 사용하는 우호 외교는 계속될 것이다.
문득 일본어는 왜 배우지 않았을까 궁금증이 생겼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일본어에 능통해 오히려 배우기 더 좋은 환경이었을 텐데 말이다. 한 측근은 “일본어는 배울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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