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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문의 소설 속 인생]과거를 수정해서 미래를 없애는 나라

입력 | 2013-07-04 03:00:00

조지 오웰의 ‘1984’




서지문 고려대 교수·영문학

인류의 역사가 진화하고 있는가, 퇴보하고 있는가는 인류가 문명사회를 이루면서부터 이어져 온 논쟁이다. 19세기까지는 물질문명이 발전할수록 인간적인 온정이나 경건한 신앙, 소박함, 충성심 같은 미덕이 감소한다는 비관론과 그래도 민주주의의 확대, 인권이나 위생, 법질서 등의 발달과 함께 인류 복지는 증가하고 있다는 낙관론이 팽팽하게 맞섰다. 20세기 초의 양차 세계대전은 인간 지능의 발달과 과학 문명의 발달이 인류를 전멸시킬 수 있다는 공포를 심어주었고, 스탈린 독재나 나치 독일의 출현은 온 인류가 경찰국가의 노예가 될 수도 있다는 공포를 갖게 했다.

이 공포를 가장 생생하게 표출한 반유토피아 문학이 조지 오웰의 ‘1984’(1949년 출간)이다. 스탈린주의를 희화화하면서 소련의 본색을 폭로한 ‘동물농장’이 오싹하면서도 자주 실소를 터뜨리게 했던 것과 달리 ‘1984’의 너무도 생생한 악몽은 계속 소름이 돋고 식은땀이 흐르게 한다.

‘1984’의 무대가 되는 경찰국가는 영국사회당(Ingsoc)이 지배하는 오세아니아다. 물론 영국을 닮기보다는 소련과 나치 독일을 닮은 나라지만 오웰은 영국을 무대로 함으로써 어느 나라나 초강대국이 되면 빠질 수 있는 위험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 나라는 체제 유지를 위해서 모든 사무실과 주거지에 양방향 소통 빅스크린을 설치하고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면서, 조금이라도 독자적인 사고를 하는 징후가 탐지되면 덫을 놓아서 증거를 확보하고 잡아들여 고문과 세뇌를 하고 강제노동을 시키거나 사살한다.

이를 위해서는 물론 거대한 감시기구와 인원이 있어야 하고 국민이 서로를 염탐하고 고발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오세아니아는 모든 당원을 서로의 감시자, 고발자로 만들고 어린이들에게 부모를 고발하도록 부추긴다. 부부도 서로를 경계하고 부모는 자식들을 두려워하며 산다.

주인공 윈스턴은 자신의 아파트에 빅스크린의 시야에 들어가지 않는 작은 구석이 있어서 그곳을 피난처로 삼는데 사실은 거기가 함정이었다. 공산당이 가축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감시가 소홀한 서민의 동네가 윈스턴이 동경하는 곳임을 알고 거기에 위장 상점, 숙소를 미리 설치해 윈스턴이 걸려들기를 기다린다.

오세아니아는 지구상 다른 두 강대국인 유라시아와 이스테이시아 중의 하나와 동맹해서 나머지 하나와 전쟁을 한다. 동맹-적대관계는 몇 년에 한 번씩 바뀌는데 전쟁의 절실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적성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생산수단의 자연적 발전으로 인한 부의 증대로 국민의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민도(民度)가 높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다. ‘떠다니는 요새’를 구축하는 등 잉여생산을 오로지 전쟁 장비에 쏟아 부어서 국민을 계속 사소한 궁핍에 시달리게 하고 1급 당원에게는 품귀 상태의 물자를 풀어서 특권의식을 만족시킨다. 그리고 끊임없는 과거의 수정으로 공산당의 무오류를 증명함과 동시에 ‘진실’을 삭제해 버려서 국민은 마치 성층권에 떠다니는 부유물같이 의식이 기댈 곳 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국민의 의식을 통제하는 아주 중요한 기제의 하나는 언어를 통제하는 것이다. 이것이 영국공산당이 제조에 심혈을 기울이는 ‘뉴스피크’다. 어휘의 수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모든 어휘에서 2중적 의미나 함축된 의미나 뉘앙스를 제거해 가장 단순한 물질적인 의미만이 남게 된 새로운 언어를 말한다. ‘명예’ ‘정의’ ‘도덕’ ‘민주주의’ ‘과학’ 등 가치나 이상을 심어주고 인식의 지평을 확대할 어휘는 모두 삭제해 ‘사고’를 할 수 없게 하고 정부 교시 속의 내재적 모순을 포착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국민을 오로지 당의 충성스러운 노예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사적인 유대를 맺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데, 성(性)적인 충족은 사적인 친밀한 관계를 생성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방해하고, 성 충동의 수술적 제거방법도 연구 중이다.

이 초강대국은 전지전능한 ‘빅브러더’에 의해 다스려지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빅브러더가 몇 살인지, 생존하고 있는지, 심지어는 실재했던 인물인지조차 모호하다.

오세아니아는 다만 어리석음과 두려움으로 인해 시민들이 당에 무조건 복종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무지막지한 고문으로 ‘자백’을 받아내고 당에 아무 위협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반항의지도 모조리 없어진 ‘반역자’라도 더 강도 높은 고문을 가하며 세뇌를 해서, 당과 빅브러더를 ‘사랑’하게 만든 후에야 강제노동을 시키거나 사살하거나 한다. 그러니까 통치의 목적이나 필요를 넘어선 가학적, 엽기적인 통치기구인 것이다.

오세아니아에는 1급과 2급 공산당원이 있고 80%의 국민은 ‘프롤’이라고 불리는 서민층인데 이들은 생산을 위해서만 존재하고 교육도 거의 못 받는, 당에서 가축과 같은 레벨로 보는 계층이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당의 감시가 비교적 덜하기 때문에 민도는 낮지만 그들은 사람다운 감정을 잃지 않았고, 그래서 윈스턴은 그들이 깨어서 일어나야만 체제가 격파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의 형제가 가까운 곳에서 인간 존엄은 물론이고 인간으로서의 의식조차 파괴당하고 있고 우리 주위에도 역사와 진실이 왕왕 위협을 받는 오늘 모두가 ‘1984’의 경고를 엄숙히 새길 필요가 있다.    
    

○ ‘1984’ 줄거리는
    
    

거대한 전체주의 경찰국가인 ‘오세아니아’의 국민 윈스턴 스미스는 하급 공산당원으로 ‘진실성(眞實省)’에 근무하고 있다. 진실성의 업무는 과거의 기록과 보도를 현재의 상황에 맞춰 ‘수정’하는 일이다. 이는 공산당이 어떤 오류도 범하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강대국들과의 동맹-전쟁관계가 바뀔 때마다 과거의 정부발표문, 승리의 보도 등을 현 상황에 맞게 수정하고 과거 자료는 완전히 소멸시키는 식이다.

39세의 별거남 윈스턴은 직장에서나 집에서나 양방향 소통 빅스크린의 감시를 받으며 사는 게 불안하고 피곤하다. 더욱 견딜 수 없는 것은 과거가 끊임없이 수정되기 때문에 ‘사실(事實)’이 존재하지 않고 온전한 정신이 기댈 지주(支柱)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빅스크린의 시야에 들어가지 않는 집 안 한구석에서 자기만의 의식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일기를 쓴다.

당원교육 시간에 그는 상관 오브라이언에게서 당에 대한 회의를 읽었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사무실에서 넘어진 여성당원 줄리아를 일으켜주다 ‘I LOVE YOU’라고 적힌 쪽지를 건네받는다. 그런 밀회는 발각돼 숙청으로 끝나는 줄 알면서도, 한 사람을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은밀한 만남을 시도하게 된다. 오브라이언은 의논할 일이 있으면 찾아오라며 집 주소를 적어준다. 상사의 집에서 윈스턴은 체제를 전복하기 위해 몸을 바칠 것을 맹세한다. 그는 곧 줄리아와 함께 체포된다. 윈스턴은 오랜, 무지막지한 고문과 세뇌의 과정을 거쳐 중앙당을 완벽히 신봉하는 ‘모범 시민’으로 거듭난다.

<끝> 그동안 애독해주신 독자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서지문 고려대 교수·영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