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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출구전략 후폭풍]양적완화뒤 외국돈 304조 유입… “코리아 엑소더스 막아라”

입력 | 2013-06-22 03:00:00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양적완화 축소 선언으로 세계 경제가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지면서 한국이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5년 만에 글로벌 ‘머니 무브(자금 이동)’의 시험대에 올랐다. 미국 등 선진국의 양적완화가 빚어낸 ‘버블(거품)’의 단맛에 길든 신흥국들의 시대가 끝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한국 경제가 새로운 국면의 승자가 될지, 패자가 될지 갈림길에 선 것이다.

경제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1997년 외환위기 때처럼 일방적인 실패를 겪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양적완화 자체가 전례 없는 경제실험이었던 만큼 이를 거둬들이는 단계에서 예상치 못한 악재들이 터져 나와 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 “한국, 다른 신흥국들과 차별화 기회”

미국의 출구전략 계획 공개로 가장 큰 충격을 받고 있는 곳은 신흥국 금융시장. 연준의 양적완화 축소가 달러화 강세, 신흥국의 경기 둔화와 맞물리면서 신흥국의 주식, 채권시장에 쏠렸던 글로벌 자금이 급격히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으로 ‘유턴’하고 있는 것이다.

골드만삭스의 도미니크 윌슨 수석이코노미스트는 21일 “신흥국들의 경제성과의 배경이 됐던 브릭스의 고속 성장, 원자재 가격 상승, 미국 국채금리 하락 등의 추세가 사라지거나 역전되고 있다”며 “지난 10년간의 신흥국의 시대는 이제 끝난 듯하다”고 지적했다.

한국 역시 연일 주가가 하락하는 등 금융시장 불안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이 예전에 비해 부쩍 개선돼 다른 신흥국들에 비해 위기를 맞을 우려가 적다고 보고 있다.

우선 탄탄한 경상수지 흑자 구조를 유지하고 있고,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 국내 금융시장 불안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던 외채의 규모와 구조도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개선돼 있다는 것.

실제로 3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 대비 1년 만기 단기외채 비율은 37.4%로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말 61.1%보다 훨씬 낮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비율도 지난해 말 기준 5.2%로 인도(―6.7%), 터키(―4.5%), 인도네시아(―2.4%) 등에 비해 안정적이다.

외화 유입 구조 역시 과거 경제위기 때와 달라져 외국인 투자가들의 이탈을 버틸 수 있는 체력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많다. 미국이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한 2008년 11월 이후 올 1월까지 국내 주식·채권시장에 들어온 외국인 자금은 304조5000억 원. 이에 비해 외국인 투자가들이 20, 21일 국내 증시에서 팔아 치운 주식은 1조2000억 원 수준이다. 국내 주식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전인 2007년 초 40% 안팎이었던 국내 주식시장의 외국인 보유 비율도 이달 20일 현재 31.37%로 떨어졌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과거에는 은행들이 달러를 빌려 외화가 유입됐다면 지금은 외국인들이 주식과 채권을 사서 외화가 들어와 있는 상황”이라며 “환차손을 부담하며 주식, 채권을 팔아 치우는 것은 외국인 투자가들에게도 부담이 되기 때문에 과거만큼 진폭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중국, 유럽위기로 삼중고 우려도

‘아베노믹스’로 급락했던 원-달러 환율이 상승(원화 가치는 하락)해 수출 경쟁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신흥국 경제가 불안해 수출에 일부 타격을 받더라도 미국 경제가 ‘질서 있는 양적완화’로 회복세를 이어가면 그 부분을 벌충하고도 남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가 미국 경제 개선의 증거가 될 수 있어 수출 증가 등 긍정적인 효과도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미국의 출구전략과 함께 터져 나온 중국의 경기 둔화와 신용 경색은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최근 중국은 금리가 급등하고 자금 부족 현상이 악화되고 있으며 6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가 9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지는 등 실물 경제지표들도 나빠지고 있다. 재정위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유럽도 여전히 불씨로 남아 있다.

일단 25일(현지 시간) 발표될 미국의 신규주택판매 지표와 26일 미국의 1분기(1∼3월) 성장률 확정치는 향후 글로벌 금융시장의 안정 여부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표가 예상보다 나쁘면 양적완화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져 불안이 확산될 소지가 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21일 환율의 급변동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한 데 이어 23일에는 기재부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등이 참여하는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위기대응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앞으로도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이 반복될 소지가 있는 만큼 정부가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좀더 적극적인 대응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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