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 상징적으로 존재하고 총리 및 의회 중심으로 국가 정책이 결정되는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는 영국과 일본 등 22개국에서는 ‘왕의 상징성’ 문제가 최근 화두로 떠올랐다. 지금까지는 국민들이 왕실의 존재를 자랑스럽게 여겼지만 글로벌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왕실이 상징성을 갖기 위해 세금을 쓰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 유럽 국가 중에서도 심한 경제침체를 겪고 있는 스페인에서는 올 4월 14일 제2공화정 수립일에 맞춰 군주제 폐지를 요구하는 시위가 수도 마드리드에서 일어났다. 이들은 “실업률이 27%나 되는 상황에서 후안 카를로스 국왕은 호화 사냥을 떠나고 국왕 가족은 스위스 비밀계좌에 돈을 숨겨두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네덜란드에서는 “국왕의 봉급이 업무 강도가 훨씬 센 미국 대통령의 2배, 자국 총리의 5배에 이른다”며 국왕의 봉급을 삭감하자는 청원 운동이 시작됐다. 영국에서도 긴축 재정과 복지 삭감 정책을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왕실 유지비가 지나치게 많다는 비난 여론이 일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국왕의 존재가 국민으로부터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국가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중동의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UAE). 두 나라는 의회도 정당도 없는 군주제 국가지만 국왕의 뛰어난 판단력과 지도력으로 이른 시일 내에 부국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1인당 국내총생산(GDP) 순위에서 카타르는 10만6393달러(약 1억2200만 원)로 룩셈부르크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UAE 역시 1인당 GDP가 6만9798달러를 기록해 스웨덴 덴마크 같은 북유럽 국가들보다 높게 나타났다. 특히 카타르는 석유산업을 바탕으로 중화학공업을 중점 개발하고 적극적으로 외국 자본을 유치하는 개방정책으로 아랍세계를 대표하는 부국이 됐다.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