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달간 한국 전통 상엿집 문턱 닳도록 드나든 英 그레이슨 교수
제임스 그레이슨 영국 셰필드대 명예교수가 10일 경북 경산시 하양읍 상엿집 안에 있는 요여를 가리키고 있다. 그는 이 요여에 그려진 십자가 모양에 주목해 한국의 상례문화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경산=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왠지 으스스한 이 상엿집에 요즘 신발이 닳도록 드나드는 외국인이 있다. 영국 셰필드대에서 22년간 한국학을 가르쳤던 제임스 그레이슨 명예교수(69·인류학 종교학). 그레이슨 교수는 한국의 전통 요여와 상엿집을 연구하기 위해 한 달 일정으로 경산에 와있다. 상례문화는 중요한 민속 문화이지만 터부시되어 한국인도 연구를 꺼린다. 특히 요여와 상엿집 연구는 거의 없는 상황에서 외국인 학자가 이 연구에 나선 것.
10일 상엿집에서 만난 그레이슨 교수는 “한국인이든 영국인이든 상례와 관련된 물품에 망자의 혼이 묻어 있을까 봐 두려워하지만, 현재를 잘 살려면 죽음을 알아야 한다”며 “요여나 상엿집 같은 상례 물품을 통해 죽음에 대한 조상의 사고와 생활방식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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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인들은 장례식에 상여와 요여를 쓰지 않아요. 그 마을에서 종교와 상관없이 십자가가 하나의 민속 문화처럼 변형된 게 아닌지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요여를 다른 요여들과 비교하며 연구 자료를 모으는 한편 자천리 마을 주민들로부터 요여와 상례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레이슨 교수는 미국 럿거스대에서 인류학을 전공하던 1965년 퀘이커교회 봉사단으로 한국에 오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1971년 감리교 선교사로 다시 한국에 온 뒤 경북대와 계명대에서 신학과 종교학, 인류학을 가르쳤다. 개신교가 한국에 전래된 과정을 연구한 논문으로 영국 에든버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종교의 전래와 변동, 토착화를 연구해 왔다.
한편 조 이사장은 한국의 상례문화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겠다는 목표로 이 상엿집을 복원하고 상엿집 주위에 상례문화전시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조 이사장은 “상엿집은 전통적인 죽음의 문화를 해석하는 도구가 된다”며 “자살과 살인 등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한 요즘 죽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산=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