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 기자가 쓰는 ‘김지하와 그의 시대’]<43>8·3조치 2
1972년 8월 9일 사채신고 마감 날 인산인해를 이룬 세무서 모습. 8·3조치는 곧 닥칠 오일쇼크에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한 위기관리 조치였다는 긍정론도 있지만 중산층의 희생을 통한 극단적인 대기업 살리기였다. 동아일보DB
‘나중에 법안을 다 만들어 복사를 해야 하는데 만에 하나 복사기가 고장 날 경우 사람을 부르면 보안이 깨질 우려가 있어 아예 복사기를 분해해 자체적으로 수리할 수 있도록 재조립하는 도상훈련까지 했다. 8·3조치를 전혀 몰랐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만약 쿠데타 모의였으면 어쩔 뻔했느냐”며 국내 정치 담당 라인을 모조리 바꾸기도 했다.’
8·3조치의 최대 수혜자는 기업이었다. 정부가 나서서 빚을 해결해 주었으니 이보다 더 큰 특혜가 없었다.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이 조치에 대해 지금의 기준으로 원론적 수준의 비판을 한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장기 자금을 공급받을 수 있는 금융 인프라 자체가 없었던 상황에서 터져 나온 부득이하고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8·3조치 후 기업들의 재무건전성은 비약적으로 향상되어 그 뒤 닥친 73년의 제1차 오일쇼크를 견뎌냈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그러나 중산층의 소득을 기업에 몰아준 가장 극단적인 대기업 살리기였다는 점에서 비판론도 강하다. 무엇보다 막상 사채 신고를 받아보니 악덕 기업인들의 ‘위장 사채’가 횡행해 충격을 주었다. ‘코리안 미러클’ 중 한 대목이다.
‘부도 위기라고 아우성치던 기업들이 적지 않게 출자자 본인이나 가족 친족 등 특수 관계인이 자기 회사에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간 ‘자기 사채‘를 놓은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총 신고 사채 금액의 3분의 1이나 되는 1137억 원이나 됐다. 박 대통령은 불같이 화를 냈으나 긴급명령에는 따로 처벌규정을 두지 않아 처벌할 방법이 없었다. 1억 원 이상의 위장 사채를 가진 유명 대기업 등 10여 개 업체에 대해 향후 일체의 정책지원을 중단하는 조치를 내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러다 보니 기업은 망해도 기업가는 잘사는 풍토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그때도 많았다.
경향신문 72년 8월 17일자 사설이다.
무엇보다 8·3조치의 희생자들은 중산층이었다. 동아일보는 72년 8월 5일자에서 ‘본사 취재망에 비친 전국의 사채동결 파장’이란 제목으로 8·3 쇼크에 빠진 중산층을 조명한다. 한푼 두푼 아껴 목돈을 마련하려던 주부들의 희망이 깨지고 집 장만에 부풀어 있던 가장들의 꿈이 깨지는 현장이 잘 담겨 있다.
‘대구시내 S국민학교 황모 교사(51)는 32년간 교사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 480여만 원을 마련, 집을 사려 했으나 자녀들의 교육비 마련 등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전셋집을 전전하면서 시내 굴지 회사에 넣어 500만 원이 되면 찾아내어 숙원의 집을 마련할 꿈을 키워 왔는데 그만 동결이 되어버려 내 집 마련의 꿈이 깨진 것은 물론 4남매의 학비 마련도 어렵게 됐다고.’
‘충북도청 김모 양(35)은 3년 거치 기간 동안 결혼도 어쩔 수 없이 늦춰지게 되었다고 하소연했는데 김 양은 결혼자금을 마련키 위해 푼푼이 든 계가 깨진다는 통고를 받고 한때 실신하기도.’
‘부산 동래구 민락동 하모 여인(42)은 집을 300만 원에 팔아 전셋집으로 옮긴 뒤 섬유회사에 200만 원을 월 4% 이자로 빌려주고 월 8만 원의 이자를 받아 이 돈으로 일곱 식구의 생계와 대학교 고등학교 중학 등에 다니는 네 자매의 학비를 대왔는데 이젠 2만7000원밖에 이자를 못 받게 되어 앞으로 살길이 막막하다고 한탄.’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1988년 펴낸 ‘한국사회와 관료적 권위주의’(문학과 지성사)라는 책에서 ‘8·3조치가 (경제 불황 극복이라는) 분명한 효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70년대를 관통하는 정경유착의 기본 유형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한다. 위기에 처한 기업들을 살리기 위해 비정상적 방법으로 미증유의 특혜를 이들에게 부여함으로써 대기업과 국가 관료제의 연합을 선명히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8·3조치와 같은 대기업 육성정책은 우리나라 독점적 재벌경제를 형성하는 발판을 마련해준다.
8·3 조치의 긍정적 효과가 어떠했든 한국의 재벌이 중산층의 희생을 바탕으로 오늘날에 이르렀음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현재 수사 중인 CJ의 경우만 보더라도 이것이 진정 자본주의 질서를 따르는 기업가의 본모습인지 국민들이 한탄과 절망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한국 재벌들은 자신들의 현재 위치가 기업 오너들의 창의정신과 도전정신으로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에는 어려울 때마다 국민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 그들이 요즘 말하는 사회공헌이라는 것도 시혜가 아니라 국민에게 진 빚을 갚는다는 마음으로 이뤄져야 한다. 지금 기업인들 중에서 이런 역사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