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정 거짓말’ 벌금 대신 실형 늘어
이에 따라 최근 검찰은 법정에서 거짓 증언을 하거나(위증) 이를 시키는(위증교사) 사람을 적극 기소하고 법원은 실형을 선고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처벌을 피하고 싶어서, 혹은 기소된 가족이나 지인을 도와주려고 법정에서 거짓말을 하려면 감옥에 갈 각오를 해야 한다.
지난해 5월 18일 부산지방법원. 두 달간 ○○백화점에서 6번에 걸쳐 2500만 원어치의 등산복을 훔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절도)로 구속 기소된 A 씨(27)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B 씨(33)가 뜻밖의 발언을 했다. “사실 ○○백화점에서 등산복을 훔친 건 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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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검사는 B 씨의 증언을 믿을 수 없었다. A 씨가 기소되기 전까지 일관되게 범행을 자백했기 때문이었다. 담당 검사는 A, B 씨가 부산구치소에서 같은 방에 있었다는 점에 착안해 같은 방의 다른 수감자들을 불러 조사했고, 한 달 전 A, B 씨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음을 확인했다.
구치소에서 A 씨는 B 씨에게 제안했다. “내가 전과가 많아서(20범) 이번에는 최소 3년 이상 선고될 가능성이 높아. 그래서 말인데, 형이 내 죄를 덮어쓰면 안 될까? 형량 1년마다 2000만 원을 줄게.”
검사는 A 씨를 위증교사, B 씨를 위증 혐의로 기소했다. 법원은 A 씨에게 징역 10개월, B 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A 씨는 절도 혐의로 선고받은 징역 4년형 말고도 교도소에서 10개월을 더 살게 됐다.
C 씨(42·여)는 지난해 2월 마작방을 운영하다 경찰 단속에 걸렸다. 이미 동종 전과가 있는 데다 1주일 전 단속됐을 때 업주를 고모라고 속여 형사처벌을 면했던 C 씨가 이번에는 삼촌에게 부탁했다. “고모가 단속에 걸린 뒤 지방에 내려가서 삼촌이 마작방을 임차한 것처럼 증언해 달라”고. 같은 해 11월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증인으로 선 C 씨 삼촌은 “제가 (먹고)살려고 마작방을 임시로 넘겨받았습니다. 단속 당시 C는 밥을 먹으려고 마작방에 왔을 뿐입니다”라고 진술했다. C 씨의 고모 역시 “마작방을 넘겼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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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 건 걸려도 처벌 수위가 약한 탓이었다. 위증사범에게 대부분 벌금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많았다. 검찰 관계자는 “위증해도 큰 손해가 생기지 않으니까 거짓 증언을 해달라는 지인이나 가족의 부탁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 특유의 온정주의 문화가 한몫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검찰과 법원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검찰 관계자는 “재판 과정에서 위증이 의심되면 적극적으로 수사해 기소하려 한다. 그동안 기존 사건 처리에 바쁘다 보니 신경을 덜 쓸 때도 있었지만 이제 재판을 방해하는 행위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 관계자도 “금품을 받고 위증하거나 위증이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경우 중형을 선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했다. 형법에 따르면 위증이나 위증교사 범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법정만큼이나 진실이 요구되는 국회에서는 위증 불감증이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원에 따르면 국회에서 위증을 한 혐의로 기소된 경우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사례가 많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국가정보 유출 의혹 사건과 관련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거짓 증언을 한 혐의로 기소됐던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를 두고 “대부분 국회 위증을 저지른 사람들이 사회적 지위가 높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의회 청문회에서 사소한 거짓말이라도 하면 예외 없이 엄벌에 처한다. 이 때문에 복잡하게 얽혀 진실을 파악하기 힘든 그 어떤 사회적 이슈라도 일단 의회 청문회를 거치면 진실이 밝혀지게 된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