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와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발터 기제킹은 숭배의 이름이다.
1895년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는 모두 독일인. 고전적인 독일연주에 프랑스 음악관을 결부시킨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다.
기제킹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은 그의 초인적인 암보력이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하룻밤 사이에 한 곡을 다 외울 수 있을 정도였다. 처음 본 악보를 연주해내는 초견력도 탁월했다. 여기에 당대 피아노의 거장들 중에서도 첫 손가락에 꼽히는 테크니션이기도 했다.
피아니스트로서 모든 재능을 갖춘 기재킹은 (당연할지 모르지만) 연습을 안 하는 피아니스트로도 유명했다. 오히려 “과도한 연습은 해로울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굿인터내셔널이 출시한 ‘모차르트 컴플리트 솔로 피아노 워크-발터 기제킹’은 생전에 기제팅이 연주하기를 즐겼던 모차르트 곡을 무려 10장의 CD에 모아 담은 전집이다. 1000조 한정판이다.
이 전집을 들을 기회를 얻었다면 기제킹의 미묘한 음색 변화에 귀를 기울여 볼 것. 기제킹은 요즘 피아니스트들도 경외해 마지않는 페달링의 명인이었다. 현과 페달을 미세하게 접촉시켜 음색을 변화시키는 ‘반(半) 페달링’ 기법은 그의 전매특허로 그가 왜 ‘페달링의 화가’로 불렸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불필요한 감정표현을 억제하고 오직 작곡가가 악보에 남긴 음악의 아름다움만을 고스란히 살리는데 치중한 ‘신즉물주의’의 추종자답게 정확한 연주, 투명한 음색을 들려준다. 최신기술의 리마스터링을 통해 선명한 음질로 들을 수 있다는 점도 이 전집의 미덕이다.
비평가들로부터 “그의 피아노는 때때로 해머가 없는 듯이 작동한다”라는 평을 들었던 기제킹의 모차르트는 그야말로 ‘순백의 모차르트’로 다가온다.
기제킹의 연주라면, 1791년에 죽은 모차르트도 틀림없이 미소를 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