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의 대가/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이순희 옮김/624쪽·2만5000원/열린책들
‘불평등의 대가’의 저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이번엔 갑이 100억 원을 훔쳤다고 하자. 100억 원을 훔치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기차게 머리 좋은 사람을 여럿 끌어들여야 하고, 첨단 장비도 동원하고, 공무원도 ‘주물러’ 놓아야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 20억 원이 들었다고 하자. 이 경우에는 국민경제에 아무런 보탬 없이 20억 원의 돈이 도둑질에 소모됐으므로 경제학적으로도 사회적 손실을 초래한 나쁜 행위이다. 국민경제에 아무런 기여 없이 특정인들의 희생 위에서 막대한 이득을 챙기는 행위를 통틀어 어떤 경제학자들은 ‘지대추구(rent seeking)’ 행위라고 한다.
‘불평등의 대가’의 저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둘째, 미국 정부는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해왔다. 2008년 미국 금융시장 붕괴의 주된 원인은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 완화였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경제위기는 금융권의 큰손들과 미국 정부가 야합해 만든 합작품이고, 서민은 그 희생자다. 금융시장 붕괴 직후 금융가의 일부 인사는 자신들이 지나쳤음을 인정하면서도 정부가 적절한 규제로 자신들을 말리지 않았기 때문에 사태가 더욱 나빠졌다며 정부에 책임을 떠넘겼다. 그러나 미국 금융가가 많은 로비스트를 동원해 정치권을 돈으로 주물러놨기 때문에 정부가 제대로 감시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보수진영은 은폐하고 있다.
이정전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
어떤 학자는 경제적으로 미국과 가장 비슷한 나라가 한국이라고 한다. 한국의 빈부격차도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부자 상위 1%가 GDP에서 차지하는 몫이 1998년 6.97%였으나 2011년에는 11.5%로 늘었다. 우리도 ‘1%를 위한, 1%에 의한, 1%의 국가’가 되지 않도록 이 책에서 교훈을 얻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