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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복지에 5년간 79조 투입… SOC 11조 삭감

입력 | 2013-06-01 03:00:00

■ 박근혜정부 135조 공약가계부 발표




박근혜정부가 임기 5년간 공약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하고, 여기에 필요한 돈은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청사진을 내놨다. 역대 정부에서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첫 시도다.

정부는 31일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열어 임기 중 국정과제의 실천 계획과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 마련 계획을 담은 ‘공약가계부’를 확정해 공개했다. 이와 별도로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등 지방공약의 추진 일정, 재원 마련 대책 등을 담은 ‘지역공약 이행 계획’도 이달 중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증세 없이 135조 쥐어짜기

이날 회의에서 정부는 5년간 140개 국정과제를 이행하는 데 모두 134조8000억 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부문별로는 △창조경제 구현과 민생경제 안정을 위한 ‘경제부흥’에 33조9000억 원 △맞춤형 고용·복지와 안전사회 구현 등 ‘국민행복’에 79조3000억 원 △문화·예술·체육 지원 확대 등 ‘문화융성’에 6조7000억 원 △확고한 국방태세 및 국제사회 신뢰 확보를 위한 ‘평화통일 기반 구축’에 17조6000억 원 등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올해 7조4000억 원을 시작으로 점차 예산 조달 규모를 증가시켜 2017년에는 42조6000억 원의 추가 예산을 마련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5년간 국세 및 세외수입 등 세입(歲入) 확충 목표는 50조7000억 원, 부문별 세출 절감 목표는 84조1000억 원이다.

우선 세입 확충은 지하경제 양성화로 27조2000억 원, 비과세·감면 정비로 18조 원, 금융소득 과세 강화로 2조9000억 원을 마련하고 나머지 2조 원 남짓은 각종 과징금과 부담금, 복권 수익 등으로 채울 계획이다. 세율 인상, 세목(稅目) 신설 등 직접적인 증세는 배제한다는 점에서 재원 마련의 현실성에 대한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세출 구조조정은 주로 성과가 나쁜 재정사업이나 ‘눈먼 돈’으로 낭비되는 예산을 막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일단 복지 전달체계 개선, 예산 부정수급 방지를 통해 복지 분야의 ‘재정 군살’을 12조 원 이상 덜어낼 계획이다. 절전 업체에 주는 지원금을 없애고 해외자원 개발, 국제 스포츠대회에 대한 국비 지원을 축소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특히 도로, 철도 등 SOC 부문에서 5년간 11조6000억 원의 예산을 깎기로 했다.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건설업계 및 지역사회의 반발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방문규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은 “경제위기 대응을 위해 부쩍 늘어난 SOC 지출 수준을 정상화시키겠다는 것”이라며 “신규 사업도 공약이나 필수사업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 복지 지출에만 59% 투입

정부가 공개한 공약 실천계획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 복지 분야다. 재정이 투입되는 전체 104개 항목의 절반(52개)이나 되고 금액 기준으로는 79조3000억 원으로 전체(134조8000억 원)의 58.8%를 차지한다.

세부적으로는 65세 이상 노인에게 최대 월 20만 원까지 국민행복연금을 지급하는 데 앞으로 5년간 17조 원을 쓰기로 했다. 단일 항목 투입 예산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여기에 1조3000억 원을 더해 노인 일자리를 매년 5만 개씩 만들고 근로기간과 보수도 단계적으로 늘리기로 했다.

저출산 정책과 무상보육·교육도 굵직한 지출 항목이다. 자녀장려세제를 도입해 ‘새 아기 장려금’을 주는 데 2조1000억 원, 셋째 이후 아이의 대학등록금 전액을 지원하는 데 1조2000억 원을 각각 쓴다. 또 0∼5세 보육료 또는 양육수당을 전 계층에 지원하는 데 5조3000억 원, 3∼5세 누리과정 지원 단가를 인상하는 데 6조50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한다. 공약 구체화 과정에서 논란이 많았던 ‘4대 중증질환’ 보장은 필수의료서비스의 건강보험을 확대하는 데 2조1000억 원을 쓰는 것으로 계획이 잡혔다. 이 밖에 기초생활보장제도 개편과 사각지대 해소(6조3000억 원), 경찰 2만 명 증원 및 수당 인상(1조4000억 원)도 공약가계부 항목에 들어갔다.

‘경제부흥’을 위한 국정과제로는 우선 철도 용지 등에 건설하는 행복주택을 20만 채 짓는 데 9조4000억 원을 쓰기로 했다. 고교 무상교육 확대 및 반값등록금 지원에도 8조 원이 넘는 돈을 투입한다. 국방 분야에서는 사병 월급을 두 배로 올리는 내용이 가장 눈길을 끈다. 지난해 월 9만7500원이던 상병 월급은 2017년에 19만5000원으로 높아진다.

○ “의미 있는 작업, 현실성은 의문”

이날 공개된 공약가계부에 대해 전문가들은 공약 실천에 대한 굳은 의지를 나타냈다는 면에서 의미 있는 일이지만 현실성은 의문이라는 평가를 많이 내놨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약에 대해 재원 조달 계획을 짠 것은 긍정적이지만 세출을 줄이거나 세입을 늘리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라며 “세출이 줄면 일자리도 줄어드는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도 “공약이라고 해서 모두 수행하는 것은 적절치 않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갖고 할 일과 그렇지 않은 공약을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의 재원 조달 계획이 경제 여건이나 재정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당장 올 1분기(1∼3월)만 해도 경기둔화로 세수(稅收)가 계획보다 8조 원 덜 걷히며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이 23조 원이나 됐다. 예상치 못한 재정 악화는 공약 실천 계획의 손질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세종=유재동·유성열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