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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정신]경북도, 지구촌 곳곳에 새마을운동 펼쳐

입력 | 2013-05-28 03:00:00

전쟁 후 경북의 가난한 마을서 시작해 세계 롤모델로 확산




아프리카 등 해외에 새마을운동을 확산하는 데 참여하는 경북지역 대학생 봉사단. 2007년부터 시작한 이 봉사단은 선발 경쟁률이 7대 1을 넘을 정도로 대학생들의 관심이 높다.

올해 3월 서울의 한 호텔에는 가나 가봉 나이지리아 르완다 세네갈 수단 앙골라 알제리 에티오피아 케냐 등 주한 아프리카 대사 14명이 총출동했다. 경북도가 마련한 새마을 사업 모델 간담회였다. 경북도가 에티오피아와 탄자니아, 르완다, 카메룬 등 아프리카 4개국에서 수년째 펼치는 새마을운동 국제화 사업 프로그램을 눈여겨 봐 왔기 때문.

이 자리에서 메스핀 미덱사 주한 에티오피아 대사 대리는 “경북도가 에티오피아에서 펴고 있는 새마을 사업은 주민들이 자발적 노력으로 가난을 몰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1970년대 지붕 개량과 농로 만들기 등을 시작으로 경북에서 싹을 틔운 새마을운동이 40여 년 만에 지구촌 잘살기 모델로 확산되고 있다. 올해 2월 서울에 온 얀 엘리아손 유엔 사무부총장은 “지구촌 빈곤 퇴치는 유엔의 주요 과제인 만큼 경북도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새마을 프로그램을 국제적으로 보급하는 일은 소중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경북도는 올해 1월 새마을 국제화를 위한 새마을세계화재단을 구미시에 설립했다. 이 재단은 새마을운동이 국제 사회에 활발하게 보급될 경우 국제기구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구미에는 새마을운동 테마공원이 24만5000m²(7만4000여 평) 규모로 조성되고 있다.

지구촌 잘살기 모델, 새마을

경북도가 새마을운동의 세계화에 눈을 돌린 때는 2005년. 베트남 인도네시아 중국 등에 새마을 시범마을을 조성한 것을 시작으로 프로그램을 매년 확대했다. 에티오피아와 탄자니아, 필리핀 등 5개국에 시범마을을 조성하고 있으며 경북에서 새마을연수를 받은 외국 공무원 등이 지금까지 62개국 2500여 명에 달한다. 2007년 도입한 대학생 새마을 해외봉사단은 그동안 6개국에 430여 명이 참여했다. 올해 여름방학에는 경북지역 대학생 700여 명이 ‘글로벌 새마을 청년봉사단’ 이름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새마을 봉사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국내 유학 중인 아시아 아프리카 대학생을 위한 새마을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하고 있다.

새마을운동은 1970년대 시작한 지역개발운동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첫 모습은 1950년대 경북 청도군 청도읍 신도마을에서 비롯됐다. 6·25전쟁 후 희망이라는 말조차 생각하기 어려웠지만 마을 주민들은 농로를 만들고 부엌을 개량했으며 감나무를 심으면서 소득증대를 꾀했다. 청도가 과일 중에서도 감이 전국에서 가장 유명하게 된 것도 이런 사정이 놓여 있다.

1960년대 들어 주민들은 통장을 갖고 새마을금고를 육성하면서 마을을 발전시켰다. 놀고먹거나 노름에 빠진 주민이 전혀 없었다. 주민 모두 부지런해 ‘개미마을’로 불렸을 정도다. 당시 마을 주민들의 기록에 이미 ‘새마을’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운동을 농촌발전의 핵심 정책으로 삼게 된 배경도 이처럼 주민들의 자발적인 잘살기 노력에서 가능했다. 1969년 여름 전국을 강타한 폭우로 신음하던 농촌을 살피기 위해 시찰에 나섰던 박 대통령이 경부선 철로변의 신도마을을 보고 기차를 세웠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대부분의 농촌마을과는 매우 다른 신도마을에서 충격적인 영감을 받았다. 신도마을 주민들은 정부 지원도 없는 상태에서 부지런했으며(근면) 자발적이었고(자조) 서로 힘을 모으는(협동) 정신을 발휘했다.

포항시 북구 기계면 문성마을도 새마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 가난에 찌든 마을이었지만 1960년대 초반 주민들이 스스로 나서 마을환경을 개선하기 시작했다. 새마을운동이 정부 정책으로 추진되면서 받은 시멘트는 마을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기반이 됐다. 10만 원어치 시멘트로 500만 원어치 일을 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71년 9월 박 대통령은 문성마을에서 전국시장군수 등 300여 명이 참석한 회의를 열고 “문성마을 같은 새마을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항시는 2009년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관을 문성리에 지었다. 기념관에는 연중 개발도상국 공무원 등이 찾아 새마을 연수를 받는다.

문성마을 새마을운동은 마을 개량에 그치지 않고 ‘영일만 기적’으로 이어져 더 큰 결실을 낳았다. 문성마을 주민들이 마을 환경을 크게 바꾸고 소득을 높여나가던 1967년 포항 남구 대송면 바닷가에서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가 기공식을 열었다.

당시 정부는 기업의 안정을 위해 공사(公社) 방식을 권장했지만 박태준 사장 등 창립 주역들은 “후발주자로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주식회사가 돼야 한다”는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이런 정신 또한 ‘스스로 일어서려는’ 새마을정신이다. 영일만 모랫바람 속에서 우여곡절을 거치며 지은 공장은 1973년 6월 마침내 용광로에서 쇳물을 쏟아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없었다면 지금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으로 성장한 포스텍(포항공대)도 생각할 수 없다.

중년을 넘긴 새마을운동은 이제 훨씬 성숙한 모습으로 지구촌이 함께 잘사는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다.

화랑 선비 호국정신과 닿아 있는 새마을 정신


경북도와 23개 시군에는 ‘새마을 봉사과’ ‘새마을과’ ‘새마을진흥담당’ ‘새마을 세계화팀’ 등 ‘새마을’이라는 용어가 들어 있는 부서가 있다. 그동안 많은 조직개편이 있었지만 새마을 부서는 사라지지 않았다. 서로 도우면서 부지런히 일하는 과정에서 새로움을 창조하는 새마을운동 정신을 고집스레 지키려는 뜻이다.

새마을운동은 하루아침에 느닷없이 생긴 것이 아니라 깊은 뿌리에서 서서히 돋아나 형성된 뿌리가 있다. 화랑 선비 호국정신이 그것이다. 이런 정신이나 정체성을 지탱하는 바탕은 ‘서로 힘을 모아 함께 잘살아야 한다’는 가치라는 점에서 별 차이가 없다. 화랑은 시대적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협동 조직체이며, 선비는 유학을 기반으로 새롭고 바람직한 공동체를 추구했으며, 호국은 나라가 무너지려는 위태로운 상황을 힘을 모아 극복하려는 자세다.

박영수 경북도 새마을봉사과장은 “새마을운동은 새로운 공동체를 추구하는 적극적인 자세라고 생각한다”며 “이런 새마을은 각자 새마음을 스스로 만들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늘 자신부터 돌아보는 태도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