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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성공한 전통시장 공통점은 “물건이 아닌 ‘끈끈한 관계’를 팝니다”

입력 | 2013-05-22 03:00:00


“이거 데번 해변에서 배 타고 나가 직접 채취해온 거예요.”

8일 영국 런던의 런던브리지역 인근 전통시장인 버러 시장. 생선 및 정육가게에서 조개를 들여다보자 가게주인 대런 브라운 씨의 입담이 이어진다.

“제가 예전에 해군에서 복무할 때 심심풀이로 다이빙을 해 가리비를 따곤 했는데 이젠 직업이 됐네요. 아, 여기 사슴 고기도 우리가 직접 사냥해온 거고요.” 가게 간판에는 브라운 씨가 잠수복을 입고 보트를 끄는 모습, 총을 들고 사냥감을 겨냥하는 사진이 걸려 있다. 과일가게에는 사과 따는 사진이, 치즈가게에는 ‘여기까지 어떻게 왔을까요’라는 입간판이 서 있다. 고객의 장바구니에는 물건뿐만 아니라 원산지에 대한 믿음과 이야기가 함께 담긴다.

영국과 스페인 시장을 방문하면서 상인들에게서 가장 자주 들은 말은 “우리는 물건을 파는 게 아니다”란 것이었다. 시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을 판다는 얘기다. 영국 지역상권협의체인 TCM 조직을 총괄하는 ATCM의 마틴 블랙월 대표는 “앞으로 교외 대형마트는 인터넷 쇼핑으로 대체될 것이고, 전통시장이 먹고 즐기고 사람들과 만나는 경험을 살 수 있는 커뮤니티 중심지로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코번트리 시장의 힘은 50년 동안 지역사회와 맺어온 끈끈한 관계다. 오후 2시 시장에서 열리는 무료 티타임은 지역 노인들의 사랑방이다. 시장 상인회에서 지역 주민을 모시고 차량을 빌려 해변으로 야유회를 떠나기도 한다. 젊은 상인들은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끊임없이 시장과 지역 소식을 주민들에게 알린다. ‘오늘 제 생일 축하해주세요, 특별 할인합니다’ 같은 깜짝 이벤트도 이를 통해 전해진다. 브라이언 섹스턴 시장 매니저는 “점차 늙어가는 주민들은 바깥출입을 덜하게 되고, 젊은 사람들은 시장보다 마트를 찾는 게 현실”이라며 “멀리 내다보면 주민들에게 당장 물건을 많이 파는 것보다 돈독한 관계를 쌓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말했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산미겔 시장은 관광과 문화, 먹을거리를 접목해 죽어가던 시장을 관광지로 되살렸다. 1916년부터 오전에 잠깐씩 과일과 채소를 팔던 허름한 시장이었지만 4년 전 고전 건축물 같은 독특하고 깔끔한 외관으로 리모델링한 뒤에 명성을 얻었다. 다른 시장보다 가격이 20∼30% 비싸지만 굴 와인 등 최고 품질의 신선제품과 다채로운 먹을거리가 많아 오전 10시부터 밤 12시까지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개방된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시장 내 TV로 방송하고, 플라멩코 등 각종 공연을 수시로 펼친다. 13일에는 당근 호박 등으로 악기를 만들어 연주하는 ‘채소 오케스트라’ 공연을 열어 고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김건영 KOTRA 마드리드 무역관장은 “스페인 전통시장들은 시장의 지역적 특성을 잘 살려 독특한 문화로 자리 잡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도 디자인과 문화를 가미해 한국의 전통과 맛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런던·마드리드=김재영 기자 red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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