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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주성하]“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전하”

입력 | 2013-05-06 03:00:00


주성하 국제부 기자

북한이 세습왕조를 따라 배우기로 했다면 적어도 공부는 제대로 해야 한다. 왕조가 흥할 때는 왕의 말이라도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전하…”라며 제동을 거는 신하가 있었다. 신하들이 목청 돋우어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만 외치면 그 왕조는 망했다. 이건 수천 년 역사가 증명해준 진리다.

현재 북한 왕조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아뢰옵기 황송하오나”를 외치는 충신이 없다는 점이다. 수십 년 전에 이미 수용소에서 흔적 없이 사라졌다. 남은 자들은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는 당연하고, “소인들은 경지를 헤아릴 바 없는 위대하고 비범하고 천재적이고…”를 자다 깨도 줄줄 욀 줄 아는 간신뿐이다. 그들이 터무니없는 아첨만 떨다 보니 김씨 3대는 우주와 태양과 신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갔고, 찬양의 수식어만 수천 가지나 된다.

북한 왕조에선 과격한 충성심 표현은 표창감이지만, 남보다 못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살아남으려면 옆의 신하가 박수를 칠 때 나는 발까지 구르며 박수쳐야 된다. 그 경쟁에서 재주 부려 살아남은 간신들 탓에 북한이 저 모양으로 망조가 든 것이다.

그나마 북한이 망하는 속도를 조금 더 늦추려면 왕에게 균형 감각이 있어야 한다. 20대부터 정치판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김정일에겐 득실을 따지는 감각이 어느 정도 있었다. “전하, 최고 존엄을 모독하는 자들을 절대로 용서치 마옵소서”라고 간신들이 아무리 아부해도 김정일이 머릿속 주판을 튕긴 뒤 “놔둬라” 하고 한마디 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젊은 김정은에겐 그게 보이지 않는다. 남보다 한술 더 뜨는 게 생활화된 간신들이 새 왕에 대한 충성을 증명하려고 “전하, 담력과 배짱을 보여 주소서” “원수들을 벌벌 떨게 하소서” 하며 주청(奏請)하는 대로 끌려가는 형국이다.

지금 북에선 왕별 박은 인간들의 목소리가 가장 높다. 17세 때부터 군에서 평생 충성을 주입받으며 외골수로 단순무식하게 살아온 이들은 간신보단 오히려 맹목적인 광신도에 가깝다. 충성과 배짱이란 눈금밖에 없는 잣대로 세상을 재단하고, 수틀리면 개성공단이 아니라 온 나라도 거덜 낼 사람들이다. 그나마 세상이 굴러가는 이치를 좀 아는 이들은 바로 알기 때문에 입을 다문다. 세대교체가 코앞인데 말 한마디로 숙청의 빌미를 만들까봐.

이런 북한을 상대하니 현재 남북 상황은 우리 잣대로 답이 안 나오는 것이다. 북한에서 ‘강’으로밖에 돌아갈 줄 모르는 스위치를 ‘약’으로 돌릴 수 있는 인물은 ‘신’인 김정은이 유일하다. 그런 그마저 남들이 붕 띄워주는 데 취해 버려 언제 스위치를 돌려야 할지 감을 모르고 있다면…. 상상되시는가. 그런 무섭게도 황당한 상황이.

주성하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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