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첫걸음으로 개성공단 국제화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만큼 개성공단의 유지 발전은 박 대통령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북한이 대화에 응하지 않는 것이 확인되자 미련 없이 ‘개성공단 전원 철수’ 카드를 꺼냈다. 이어 당장 27일 개성공단에 입주한 123개 업체의 직원 127명을 모두 철수시키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개성공단에는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와 현대아산, 한국전력 등 인프라를 담당하는 직원 49명만이 남게 된다. 입주기업 직원이 모두 철수함에 따라 사실상 개성공단이 가동 10년 만에 멈춰서는 셈이다.
이어 박 대통령이 개성공단 내 단전, 단수 조치를 취할지 주목된다. 한전이 공급하는 개성공단 내 전기가 끊기면 공단 내 시설을 북한이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 없다. 전기가 끊기면 물 공급도 자동으로 끊긴다. 현재 공단에 제공되는 식수는 공단뿐 아니라 개성시 일반 가구에도 공급되고 있어 단수 조치가 이뤄지면 개성시 가구의 4분의 1 정도가 식수난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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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이 폐쇄되면 남북관계는 당분간 더 얼어붙을 가능성이 크다. 박 대통령은 여러 차례 개성공단은 남북관계가 신뢰로 나아갈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라고 밝혀 왔다. 다시 말해 북한이 남북 간 약속을 어기고 개성공단을 폐쇄하면 박 대통령이 구상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도 더이상 진행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개성공단 폐쇄로 입주기업들의 경제적, 정신적 고통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박근혜정부가 북한 주민을 위한 인도적 지원에 나서는 것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가뜩이나 경제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대북 관계를 강경 일변도로만 끌고 가는 것도 박근혜정부로서는 부담이다. 이 때문에 북한이 대화에 나설 것을 거듭 촉구하면서 국제적 여론을 조성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미 우리는 여러 차례 북한에 대화를 제의했고, 그것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우리가 다음에 어떤 카드를 쓰느냐는 전적으로 북한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날 정부가 성명을 발표하면서 각종 표현을 두고 고심한 것도 ‘강(强) 대 강’ 대결 국면으로만 비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정부는 ‘강제 철수’라는 표현 대신 ‘전원 귀환’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여기에는 북한이 전향적 태도를 보이면 언제든 개성공단을 원상 복구할 수 있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개성공단이 폐쇄되는 것은 아니다. 대화를 통해 개성공단을 정상화하겠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어쨌든 북한의 도발 위협이 최근 다소 주춤해진 게 사실이고 냉각기를 거치면 대화의 모멘텀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윤완준 기자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