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김숨 지음/320쪽·1만3000원/현대문학
팍팍한 살림살이, 미래가 보이지 않는 불안감. 서민들의 지난한 삶은 고부 관계까지 변형시켰다. 김숨(사진)의 장편소설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은 서로에게 상처만 주며 가정을 위기로 몰고 가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대립을 날카롭게 그렸다. 현대문학 제공
흔히 볼 수 있는, 너무 평범해서 드라마 소재로도 쓰이지 못할 이 가족의 얘기를 작가는 지독히 물고 늘어진다. 일상적인 사물도 현미경을 들이대면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게 되듯이, 소설은 자신의 모든 불행을 시어머니 탓으로 돌리는 며느리, 그리고 며느리를 대신해 가사와 육아 부담을 모두 짊어지면서도 변변히 대꾸 한번 못하는 어눌한 시어머니의 대립을 촘촘히 짚어낸다.
이 며느리가 정신병자일까. 물론 과장도 있다. 하지만 소설을 읽을수록 우리들의 모습을 읽을 수 있어 내내 씁쓸했다. 자식 양육과 교육에는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으면서, 부모에게는 애정을 덜 쏟는 게 현실 아닌가. 자녀에 대한 집착은 어쩌면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자신의 삶을 자식이 바꿔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렇기에 “아들이 나를 비롯해 가족 누구도 닮지 않는 돌연변이였으면 좋겠다”는 며느리의 바람은 탈출구 없는 지난한 현실에서 외치는 절규처럼 들린다. 이때쯤이면 기괴했던 며느리에게 연민이 느껴진다.
수돗물이 단수된 집에서 침이 말라가는 구강건조증을 가진 시어머니, 단수와 시어머니의 병에 히스테리를 일으키는 며느리를 다루는 현재와 이들의 과거 모습을 오가며 소설은 진행된다. 타들어가는 갈증과 단수된 집에서 나오는 온갖 악취가 밀도 있게 부풀어 오르며 그로테스크한(기괴한) 긴장감을 이끌어낸다.
“내 앞에 있는 사람에 대한 존엄성을, 또 그들과 더 잘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봤으면 했다”는 게 작가의 집필 의도. 소설 속 가정처럼 우리 집도 어딘가 ‘말라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살펴보자. 쩍쩍 갈라져, 부스러지기 전에.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