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자력협정 2년 연장’으로 가닥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의 목적은 1974년에 발효된 협정을 한미 양국의 달라진 현실에 맞게 고쳐서 미래의 공동 이익을 위한 튼튼한 발판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의 협상 전략은 △40년 전 ‘주는 미국’과 ‘받는 한국’이란 일방적 구도 속에서 체결됐던 협정을 호혜적으로 바꾸고 △세계 5위의 원전 보유국에 걸맞은 우라늄 저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확보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5차 본협상 이후 14개월 만에 6차 협상 테이블(16∼18일 미국 워싱턴)에 마주 앉은 한미 대표는 ‘협정 시한 2년 연장’이란 초라한 타협안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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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얻은 것 없이 협정 시한만 연장
정부 고위 관계자는 19일 “협상 첫날 결과보고 때만 해도 한미 간 이견을 조율하기 어렵다는 내용만 있었다. 연장안 논의가 있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협정 기간 2년 연장’ 타협안이 다분히 미 측의 공세에 밀린 결과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한국 측은 협상에서 △핵연료의 안정적인 공급에 필요한 우라늄 저농축 권리 조항을 마련하고 △포화상태인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재활용(재처리) 방식인 ‘파이로 프로세싱(건식처리)’ 기술에 대한 미국의 동의를 받으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이 일부 허용할 의사를 밝히면서도 한국 측이 수용하기 어려운 단서를 많이 다는 바람에 의견 조율이 불가능했다고 다른 고위당국자가 전했다.
이에 정부 일각에서는 “강경한 미국을 설득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자 한미 정상회담의 갈등 요소를 없애는 쪽으로 협상 전략이 선회한 것 같다”는 해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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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핵심 관계자는 “미국과 협정 개정에 타협의 여지는 아직 있다. 이달 말까지 다양한 형식으로 한미 간 협의를 더 진행한 뒤 ‘협상 시한 연장’ 안을 받을지를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달 초 박 대통령의 방미 전까지는 협상 성과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겠다는 뜻이다.
○ 예상보다 더욱 강경한 미국
존 케리 국무장관은 최근 방한했을 때 “한국의 원자력 안전관리에 믿음과 존경을 보낸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번 협상에서 비확산 정책에 따른 농축과 재처리 금지를 핵심 동맹국이자 ‘핵 모범국가’인 한국에까지 엄격하게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중요한 국정 철학인 핵 비확산 정책 앞에 동맹국 한국의 국익이나 국민 정서는 철저히 외면당한 셈이다.
미국 의회 관계자는 “미국 행정부는 한국의 요구가 핵무장이 아닌 경제적 상업적 핵 이용 문제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협정 개정안의 비준권을 가진 의회 관계자들은 ‘한국의 농축 재처리’와 ‘북한의 핵 개발’을 구분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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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표 언론 뉴욕타임스도 19일 원자력협정 개정에 강력히 반대하는 사설을 게재했다. 이 신문은 “한국 측 요구를 수용하면 국제사회 안보가 취약해질 수 있으니 협상에서 미국이 강경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한국이 농축과 재처리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최근 심각해진 남북관계 긴장 때문”이라는 논리를 폈다.
윤완준 기자·워싱턴=신석호 특파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