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아그라
천광암 경제부장
인류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상품치고 실패나 시행착오의 결과물이 아닌 경우는 드물다. 페니실린, 전자레인지, 껌 등은 실패가 없었으면 아예 세상에 등장할 수 없었던 것들이다. 백열전구 이후 인류의 밤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발명품인 ‘비아그라’ 또한 실패한 심장약 개발프로젝트의 부산물이다.
창업의 세계도 비슷하다. 최근 들어 국내 벤처 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라고 손꼽을 수 있는 카카오가 대표적이다. 카카오의 전신은 2006년 설립된 아이위랩이라는 곳이다. 이 회사는 ‘부루’라는 서비스를 내놨지만 결과는 실패작이었다. 이어 2008년 내놓은 ‘위시아’ 서비스도 마찬가지였다. 부루와 위시아는 비록 연이은 실패작이었지만, 카카오톡이 크게 성공하는 밑거름과 자양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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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법인 언스트앤영이 지난해 주요 20개국(G20)의 성공한 청년기업가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자. ‘당신 사회에서는 사업 실패를 배우는 기회로 받아들이는가?’라는 것이 질문이었다. 한국에서는 “그렇다”는 응답이 24%에 불과했다. 20개국 중 이탈리아와 더불어 꼴찌였다. 중국은 그 비율이 54%였고, 미국과 브라질도 50%를 웃돌았다.
한국인들이 사업실패를 배우는 기회로 생각할 여유가 없는 이유는 단순하다. ‘낙오자’라는 낙인이 평생 물귀신처럼 쫓아다니기 때문이다. 사업실패가 곧 ‘경제적 사형선고’로 직결되는 사회에서 실패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할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한국에서는 심지어 남의 실패까지도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일이 많다. 남이 빚을 못 갚으면 내가 대신 갚겠다는 금융계약, 즉 연대보증 이야기다. 한국에는 저축은행 할부금융사 보험사 등 제2금융권에서만 무려 200만 명이 연대보증의 올가미에 걸려 있다. 일본 등 몇몇 나라에도 연대보증제도가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처럼 사람을 ‘빚 지옥’에 몰아넣고 평생 숨통을 조여 가는 정도는 아니다.
금융당국이 제2금융권 연대보증제도 폐지방안을 추진 중인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금융당국은 원칙을 피해갈 수 있는 예외를 일절 허용해선 안 된다. 제2금융권보다 피해가 심각한 대부업계 등의 연대보증도 서둘러 뿌리 뽑아야 한다. 독버섯을 쓸어낼 때는 작은 홀씨 한 알도 남겨둬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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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지나친 성공강박증으로 몰아넣는 제도와 관행들이 남아있는 한 창조경제의 여린 싹은 절대 딱딱한 껍질을 뚫지 못할 것이다. 연대보증제도는 그저 하나의 작은 예다. 이런 ‘손톱 밑 가시’를 뽑아내는 일이 바로 주무장관도 모르고, ‘며느리도 모른다’는 창조경제의 실체가 아니겠는가.
천광암 경제부장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