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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코리아/라이언 캐시디]내가 판소리를 배우는 이유

입력 | 2013-04-01 03:00:00


라이언 캐시디 한림대 국제학부 교수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판소리를 배우고 있다고요? 한국 사람도 하기 어려운 걸 하다니! 멋있어요!”

그렇다. 나는 외국인이다. 하지만 판소리를 배우면서 외모와 자란 환경이 달라도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비슷한 점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 중이다.

한국에 살면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말’이었다. 특히 사군자 그리기와 검도 같은 전통문화를 배우면서 한국에서의 의사소통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판소리는 가장 큰 도움이 됐다.

심청가, 거대한 한국이야기

나는 노래를 잘 못했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합창단원 선발 시험에서 당시 음악 선생님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시험에 떨어진 그날 이후 음악은 기피 대상이 됐고, 이후에는 음악 관련된 일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다. 판소리를 배우기 전에는 “노래 부르러 가자”는 말만 나와도 쥐구멍이 있다면 당장에라도 숨어버리고 싶은 심정으로 피해 다녔다. 그랬던 내가 판소리를 배우고 있으니 세상에 절대 불변은 없는 것 같다.

나는 3년 전부터 심청가를 배우고 있다. 우리 선생님께서 제일 강조하는 것은 청중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정확한 발음으로 입을 크게 벌리고 소리를 내는 것인데, 판소리 박자를 익히고 다양한 음역대의 소리를 따라 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판소리 심청가는 겨우 한두 줄 문장에도 처음 들어본 말과 한자가 수두룩하다. 매번 판소리 수업을 하기 전 사전에서 모르는 단어를 찾아가며 공부를 하는데 17세기 속 인물을 통해 21세기 현재를 배우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 좋다.

예컨대 심청가에서 심청은 어린 시절부터 앞을 못 보는 아버지 대신 밥을 빌러 다니며 실질적인 가장이 된다. ‘어른아이’가 된 딸 심청과 시각장애를 가져 일을 하기가 어려운―어쩌면 조선후기 몰락한 양반을 앞 못 보는 가장으로 비유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아버지 심봉사가 겪게 되는 난관들은 부모와 자식 관계, 장애에 대한 사회의 이해와 태도 등 과거에 일어난 사건 사실을 통해 현재를 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들이다.

비록 심청가 속 한두 문장은 한국 문화의 아주 작은 부분이겠지만, 그 실밥처럼 조그맣게 삐져나온 부분을 조심스럽게 잡아당겨 풀어내다 보면 거대한 이야기를 마주하게 된다. 짧은 이야기 안에 수백 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과 그 시대의 사회, 문화, 경제, 심리, 철학 등 많은 것들이 압축돼 있다. 그래서 판소리 공부는 내게 의사소통 능력을 길러주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사고의 틀을 형성하고, 타인과 소통한다. 만 명에겐 만 가지 서로 다른 경험과 생각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래서 소통이 어려울 수 있다. 내가 경험한 것만을 가지고 ‘내 말이 옳다’ ‘그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판단할 순 없다. 그저 서로 다를 뿐이다.

다른 문화 모습들 이해하게 돼

그래서 다른 문화를 경험하고 이해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서로의 문화에는 서로 비슷한 것들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들어 있다. 그러한 작은 공통점들을 자세히 오래 들여다보면 사랑이 생기고 다른 수많은 차이까지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에게는 그런 변화와 차이를 확실하게 터준 물꼬가 한국의 전통예술, 특히 판소리였다. 판소리는 소리로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아서 무척 어렵다. 그렇지만 이 같은 공부는 인종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나아가 국제학부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선생으로서 글로벌 인재를 키우기 위한 기본 바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요즘 재미있는 것은 내가 한국말로 꿈을 꾸는 경우가 엄청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캐나다에 있는 내 부모님과 가족들이 꿈속에서 나와 한국말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나는 진짜 파란 눈이 맞는 걸까.

라이언 캐시디 한림대 국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