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선하-김홍규 교수팀, 43만명 9년간 추적 관찰
다만 박 씨의 혈당은 10년 가까이 ‘당뇨병 전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아직 당뇨병에 걸리지는 않았지만 정상 범위를 넘어섰다는 이야기다. 보통 공복 혈당이 dL당 125mg 이상이면 당뇨병으로 분류한다. 당뇨병 전 단계는 dL당 100∼125mg. 박 씨의 공복 혈당은 dL당 105mg과 115mg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했다. 단 한 번도 당뇨병 단계에 이르지는 않았다. 그가 허혈성 심장 질환을 앓게 된 이유는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당뇨병에 걸리지는 않았지만 당뇨병 전 단계에서도 심·뇌혈관 질환에 걸릴 확률이 일반인보다 높기 때문. 최근 이를 입증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선하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와 김홍규 서울아산병원 건강증진센터 교수 연구팀은 1996∼2004년에 전국 17개 건강검진센터를 이용한 43만 명(남자 26만 명, 여자 17만 명)의 건강 상태를 국민건강보험공단과 함께 관찰했다. 국내 최대 규모, 최장 기간의 추적 관찰 기록이다. 관련 논문은 지난해 말 발행된 미국 당뇨병학회 공식 학회지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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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당뇨병 전 단계를 크게 ‘약한 단계’(공복 혈당 dL당 100∼109mg)와 ‘심한 단계’(dL당 110∼125mg)로 나눠 심·뇌혈관 질환의 진행 상황을 살펴봤다. 당뇨병 전 단계의 사람이 허혈성 심장 질환에 걸릴 확률은 건강한 사람보다 각각 17%(약한 단계), 30%(심한 단계) 높았다. 당뇨병에 걸린 이후에는 이 확률이 95%까지 껑충 뛰었다. 나이가 들면 혈관 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다. 연구팀은 이런 점을 통계처리에 반영했다. 나이와 함께 고혈압, 고지혈증, 흡연, 비만, 가족력 등 심·뇌혈관 질환에 걸릴 수 있는 위험인자를 모두 반영해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이 경우 각각 6%(약한 단계), 11%(심한 단계), 70%(당뇨병 이후)씩 건강한 사람보다 심·뇌혈관 질환에 걸릴 확률이 더 높았다.
같은 방법으로 허혈성 뇌혈관 질환(뇌경색)에 걸릴 확률도 조사했다. 당뇨병 전 단계의 사람은 일반인보다 뇌경색에 걸릴 확률이 각각 13%(약한 단계), 38%(심한 단계), 114%(당뇨병 이후) 더 높았다. 김 교수는 “당뇨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해도 혈당이 높아지고 있다면 식이 조절을 통해 체중을 감량하고 운동을 하는 등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당뇨병으로 진행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심·뇌혈관 질환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당뇨병 전 단계는 당뇨병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2002년 진행된 국내 연구에 따르면 당뇨병 전 단계일 때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40% 정도가 4년 후 당뇨병에 걸렸다. 최근에는 당뇨병 전 단계에 이르는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 2011년 서울아산병원 건강증진센터 검진 통계에 따르면 당뇨병 전 단계로 진단을 받은 남성 네 명 중 한 명 이상(26.3%)이 20, 30대였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