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먹고는 남은 대가리도 손못대게 야단”“13세에 민며느리… 시집구박에 자살 생각도”
전북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리 바닷가에서 연구자들이 이병래 할머니(75·가운데)의 시집살이 체험담을 듣고 있다. 도서출판 박이정 제공
신동흔 교수
경북 포항시 청하면 상대리에 사는 김남규 할머니(84)의 젊은 시절 얘기다. 한 많은 세월에 이젠 주름이 굵게 파인 할머니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자신의 기구한 인생을 글로 쓰면 책 한 권은 족히 될 거라고. 호된 시집살이로 고난과 인내의 삶을 살아온 할머니 109명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구술자료가 출간됐다. 그것도 10권이 한꺼번에.
정소덕 할머니(82·전남 진도)는 맏며느리로 아이 열 명을 낳아 키우면서 남편의 외도로 마음고생까지 했다. 남편이 밖에서 만난 여자를 집으로 데려와 몇 달씩 살게 했으니 심정이 오죽했을까. “각시를 닛(넷) 얻었어. 닛 얻어갖고 마지막 한 년은 애기꺼징 낳고. 다섯 달두 살다, 여섯 달두 살다, 가거덩.” 남편의 여자들은 정 할머니가 너무 착해서 미안하여 더이상 머물 수 없다며 떠나곤 했다.
호랑이 같은 시어머니 밑에서 살아온 이남화 할머니(77·충북 음성)는 친정어머니가 왔을 때 시어머니가 눈길도 주지 않은 기억이 뼈에 사무친다. “우리 어머니가 몇 번 울고 갔어요. 하도 노인네가, 시어머니가 사돈댁이 와도 본 척도 안 하고, 그래서 몇 번 울고 갔어요. 딸도 맨날 우는 거지.” 말년에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극진한 병 수발을 받고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 뒤 세상을 떴다.
책에는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빼곡하다. 서명순 할머니(81·전남 담양)는 결혼하자마자 남편이 군대에 가는 바람에 6년간 홀로 시댁을 챙기며 살았지만 늘 부뚜막에서 혼자 밥을 긁어 먹어야 했다. 시댁 식구들은 조기를 구워먹고 남은 대가리마저 며느리가 손을 못 대게 야단을 했다. 조미영 할머니(80·충북 제천)는 아홉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다른 집에 수양딸로 보내졌다. 수양아버지한테 자주 맞아 살 수가 없어 돌아오자 친아버지는 열세 살의 조 할머니를 동생까지 딸려 깊은 산중 마을에 민며느리로 보냈다. 시집에서도 구박이 계속되자 차라리 호랑이한테 물려 죽자며 밤에 동생을 이끌고 산으로 올라갔다.
연구팀은 수많은 경험담 중 왜 시집살이에 관심을 뒀을까. 신 교수는 “사회적, 가정적으로 약자였던 여성의 삶의 곡절을 표상하는 화두가 곧 시집살이”라며 “시집살이 체험담에는 절박한 삶이 있고 진정한 역사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책의 자료는 구비문학, 민속, 생활사, 여성사, 사회사 등의 연구에 기초 자료로 활용될 수 있고 기막힌 사연은 소설이나 드라마, 다큐멘터리 창작에도 좋은 소재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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