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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용 “고상함 빼고 광기로 채웠어요”

입력 | 2013-03-21 03:00:00

이건용 서울시오페라단장, 시민 참여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 제작




이건용 서울시오페라단 단장은 다음 달 무대에 오르는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 연습 현장에서 악보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는 “뛰어난 예술적 품질, 오페라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을 전달하지 못하면 그 자리는 쉽게 다른 것으로 대체되고 만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오랜 친구인 오페라 연출가 문호근(1946∼2001)이 언젠가 그랬다고 한다. “오페라는 어떤 장르도 능가할 수 없는 굉장한 감동을 줄 수 있어. 분명해.” 그는 그때 이렇게 답했다. “이제 오페라는 사양길에 들어섰어. 너 재주 많고 능력 많은 거 안다. 오페라 안 해도 다른 일 얼마든지 할 수 있잖아.”

오페라에 빠진 친구를 말리던 그가 이제는 오페라 만드는 일을 한다. 심지어 “시민들이 오페라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불을 질러야 한다”고 말한다. 베르디 탄생 200주년을 맞아 다음 달 오페라 ‘아이다’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올리는 서울시오페라단의 이건용 단장(66) 얘기다.

‘아이다’는 그가 지난해 7월 취임한 뒤 선보이는 첫 대형 오페라로 서울시오페라단이 25년 만에 공연하는 작품. 요즘 서울 세종로 서울시오페라단 연습실에서는 ‘아이다’ 리허설이 한창이다.

이 단장은 취임 직후부터 ‘시민’과 ‘참여’라는 키워드를 강조해왔다. 이번 무대에는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 시민합창단 50명과 시민배우 40명이 참여한다. 프로 성악가가 아닌 아마추어의 참여를 두고 우려와 기대가 공존한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오페라는 예술적 영양가가 풍부한 장르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뛰어난 성악가들을 풍성한 자산으로 갖추고 있지요. 부족한 것은 좋은 작품과 이를 키워줄 시민의 구심력입니다. 오페라 무대에 직접 참여하는 경험을 통해 시민들을 영원한 오페라 애호가로 붙잡을 수 있습니다.”

그는 시민합창단의 잠재력을 직접 경험했다. 그는 올해로 16주년을 맞는 시민합창단 ‘음악이 있는 마을’의 음악감독을 창단 때부터 맡고 있다. 단장은 이강숙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기획감독은 홍승찬 한예종 교수다.

작곡가이기도 한 이 단장의 수난곡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시민합창단이 부르는 것을 독일 다름슈타트 음대 학장이 듣고, 독일에 추천했다. 24일 수난곡의 독일어 버전이 독일 다름슈타트 파울루스 교회에서 초연된다. 이 단장은 “실력을 갖춘 시민이 자신감과 자긍심을 느끼고, 그 역량으로 오페라를 성공시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오페라의 유령’ 같은 대형 뮤지컬 연출 경험이 있는 김학민 씨가 ‘아이다’의 연출을 맡았다. 이 오페라의 키워드를 ‘광기’로 설정한 두 사람은 오페라를 둘러싼 전통적 관습을 넘어서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무대미술도 이집트라는 배경을 직설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초현실주의 미술 작품처럼 꾸밀 계획이다.

“‘오페라는 왜 고상해야만 하느냐’는 질문에서 시작했습니다. 라다메스가 승리하고 돌아오는 장면에서 군중이 ‘우와’ 하는 함성을 지르면서 물밀 듯 밀려나올 겁니다. 희생제식 장면에서는 사람이 제물이 돼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는 2월 말 33년 동안의 교직 생활을 마치고 한예종에서 정년퇴임했다.

“오페라를 제작하는 작업을 처음 하다 보니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네요. 은퇴하면 조용히, 행복하게 가곡을 쓰려고 했는데. ‘내가 왜 이렇게 됐나’(웃음) 생각해 보니까 오페라가 지닌 묵직한 가치 때문이더군요.”

에티오피아 공주 아이다 역에 임세경 손현경 손현희, 이집트의 장군 라다메스에 신동원 윤병길 이원종, 이집트 공주 암네리스에 이아경 양송미 김정미. 정치용의 지휘로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반주를 한다. 4월 25∼28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2만∼12만 원. 02-399-1783∼6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