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민미술관 ‘이득영 사진전’
# 그날 저녁: 배를 타고 서울 잠실에서 행주대교까지 48km의 물길을 따라 한강의 남과 북을 촬영했다. 4초마다 셔터를 누르면서 때론 환하게 불 밝힌 아파트 숲을, 때론 불빛을 보기 힘든 선유도 공원을 스쳐갔다. W자 형태의 강을 따라 남산 서울타워가 다른 각도로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에 밀봉된 ‘그날’은 2012년 10월 30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득영 사진전: 공원, 한강’은 같은 날 하늘과 강에서 바라본 공간과 시간을 고스란히 담은 타임캡슐의 봉인을 푸는 자리다. 더 높은 곳에서, 보다 넓은 시각으로 바라본 풍경은 우리가 평소 보지 못한 관점을 제시하기에 익숙한 듯 새롭다.
○ 도시를 읽는 새로운 시각
사진작가 이득영이 배를 타고 한강의 밤을 촬영한 작품. 일민미술관 제공
그는 2006년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의 69개 간이매점을 똑같은 형식으로 찍은 ‘한강 프로젝트1’을 전시와 책으로 발표하면서 이름을 알렸다(이후 간이매점은 ‘한강르네상스’에 밀려 죄다 사라졌다). 이어 헬기에서 내려다본 한강 다리 25개를 촬영한 ‘한강 프로젝트2’, 강남 테헤란로 일대를 하늘에서 조감한 ‘테헤란’이 나왔다.
2010년 김포에서 잠실까지 배를 타고 한강에서 촬영한 강남북 풍경을 ‘두 얼굴’ 연작으로 발표했고 지난해엔 밤 버전을 완성했다. 약 1만 장의 디지털 이미지를 합성한 144m 길이의 파노라마 사진이 2층 전시장을 온전히 채운 모습이 장관이다. 발걸음을 옮기면서 아래위로 대칭을 이룬 강남북 풍경을 비교해보는 것은 낯선 시·공간에 온 듯한 재미를 준다.
사진작가 이득영은 헬기를 타고 경기 용인의 에버랜드를 촬영한 ‘공원’ 연작을 선보였다. 인위적으로 조성한 공원이 인공낙원인지 사유하는 작업이다. 일민미술관 제공
비행에 대해 엄격한 규정이 있는 만큼 헬기를 띄워 사진을 찍는 것 자체가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국방부 기무사 등에서 허가를 받고 시간당 180만 원이란 헬기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구글 어스를 통해 촬영 대상의 좌표값을 계산하고 날씨처럼 예측할 수 없는 변수도 감안해야 한다. 그는 “항상 치밀한 계획이 필요한 만큼 내 작업은 거의 머릿속에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여러 제약에도 그는 몸으로 탐험하는 작업을 계속할 작정이다. 개별적으로는 무덤덤한 정보의 파편처럼 보이는데 이들을 집적하면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작업에 재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작가는 “내 목표는 예술가라는 타이틀이 아니라 작업을 즐기면서 계속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