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해못할 영화등급 판정
매춘-자살 장면 나오는데…
초등생이 봐도 좋은데…
초등학교 교사인 김팽년 씨(47)는 반 학생들과 ‘7번방의 선물’을 보고 싶었지만 등급이 ‘15세 이상’이라 포기했다. 하지만 김 씨는 혼자 영화를 본 뒤 “문제가 될 만한 장면이 별로 없는데도 왜 15세 이상으로 제한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의아해했다.
영화는 요즘 뜨거운 문화상품이다. 지난해 관객 수는 1억9489만 명으로 사상 최고치였으며 올해도 1, 2월 관객 수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7번방의 선물’은 1000만 명 이상, ‘레미제라블’은 600만 명 가까이 봤다.
전문가들은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의 들쭉날쭉한 등급 판정이 과중한 업무량 탓이라고 지적한다. 지난해 영등위가 분류한 영화는 총 1002편. 영화등급분류소위원회 위원 7명이 1년에 300일을 근무했다고 가정했을 때 하루 3.33편을 봐야 하는 물량이다. 영화가 보통 2시간이므로 하루 6.66시간(3.33편×2시간)을 보고 회의를 거쳐 등급을 분류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영등위는 이런 문제 때문에 지난해 9월 예심 제도인 비상근 전문위원제를 도입했다. 전문위원들은 소위원회에 앞서 영화를 보고 의견을 낸다. 하지만 이 제도가 도입된 후에도 ‘7번방…’이나 ‘레미제라블’과 같은 등급제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등급분류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영등위는 지난해 선정성, 폭력성 등 37개 등급분류 조문을 117개로 늘렸다. 정지욱 평론가는 “영화는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천차만별로 읽힌다. 좀더 세분화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영등위에서 ‘제한상영가’ 등급이 잇따라 나오는 것도 문제다. 영등위는 최근 전규환 감독의 ‘무게’를 제한상영가 판정했다. 이 조치가 내려지면 전용 극장에서만 상영이 가능한데, 국내에는 전용 극장이 없다. 해당 영화로선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무게’는 지난해 베니스영화제에서 퀴어사자상을 타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황철민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는 정부가 영등위를 운영하고 등급 판정을 의무화하는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문화적 판단은 정부기관보다 시민의식과 시장에 맡기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국 일본 영국 독일 등 선진국은 등급분류를 영화인이 주축이 된 민간 자율기구가 담당한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