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훈 문화부 차장
이 장면에서 예전에 이란에 출장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자동차를 이용해 이란 국경을 통과했는데, 당시 국경 검문소에서 우리 일행의 짐 속에 불순한(?) 사진이나 동영상이 들어 있는지 철저히 조사했다. 그들은 내 노트북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일일이 검사하는가 하면 한국에서 가져온 시사 잡지에 실린 남성용 속옷 광고 사진을 검은색 매직으로 시커멓게 칠하며 검열하는 통에 4∼5시간 동안 붙잡혀 있어야 했다.
그러나 실제로 테헤란에서 만난 이란인들의 실생활은 달랐다. 집집마다 베란다에 불법 위성 안테나를 숨겨놓고 수백 개의 해외 채널을 시청하고 있었다. ‘19금 방송’도 포함돼 있음은 물론이다. 신정(神政)국가인 이란의 종교경찰도 음주와 이성교제에 관한 개인의 욕망을 전부 규제할 수 없음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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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란은 미국도 세계 최고 영화산업의 메카인 할리우드를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보내는 극장국가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영화 ‘아르고’는 1979년 이슬람혁명 당시 억류됐던 미국대사관 직원들을 구하기 위해 중앙정보국(CIA)과 할리우드 영화제작자들이 합심해 벌인 인질구출 작전을 그린 작품. 이를 두고 이란 관영매체는 “CIA가 기획하고, 백악관이 시상한 반(反)이란 정치선동 영화”라고 비판했다.
예전에 문화부 공연 담당 기자를 하다 정치부 국회 출입기자로 발령이 났을 때 국회 본회의장 기자석이 예술의전당 박스석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본회의장은 무대이고, 정치인은 배우처럼 생각됐다. 그런데 문제는 퍼포먼스의 질이었다. 공연은 재미없으면 중간에 나와 버릴 수 있지만 국회는 진흙탕 몸싸움이더라도 취재를 그만둘 수 없어 내 자신이 참 불행하다고 느껴졌다.
미디어가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어느 나라나 극장국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문제는 어떤 콘텐츠를 보여줄 것인가에 있다. 취임식이 일주일이나 지났는데도 새 정부의 극장에는 배우들조차 보이지 않는다. 경제난과 북핵 위기 속에 정부조직 개편안 협상도 끝내지 못하는 청와대와 국회를 보고 국내외 관객들은 벌써 하품을 해대기 시작했다.
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