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 서울대 교수·화가
이 첫마디에 ‘이 양반 뻥이 좀 센 사람이군’하는 생각이 들었다. 1000여 곳의 섬 이야기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일개 군이 섬 1000여 곳을 거느리고 있다면 그게 어디 군인가 제국이지 싶었던 것이다.(나중 알고 보니 박 군수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것도 정확히 1000곳 하고도 4곳이 더 있었다.)
그는 그 섬 한 곳에 몇천 평 규모로 김환기 미술관을 짓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런 색깔 있는 미술관을 몇 개 더 구상하고 싶다고 했는데 미술관 이야기는 그의 멀티프로젝트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는 활화산처럼 신안 비전을 쏟아냈고 그 실천방안까지 조목조목 열거했다. 말이 자문이지 일방적으로 신안 홍보를 듣고 있는 수준이었다.
예사로이 이윤이니 경영이니 하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예컨대 경영자 본색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거 무슨 군정을 회사경영처럼 생각하느냐고 말하려는데 동석한 한 지인이 나를 쿡 찌르며 최근 박 군수가 CEO들이 받는 무슨 상을 받은 바 있다고 귀띔해 주었다. “다만 우리가 나오시마에 꿀리는 것은…” 갑자기 박 군수의 목청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안도 같은 건축가에게 작품을 맡기기 어려운 현실적 여건이라는 것이었다. 자금도 그렇지만 크고 작은 모든 공사에 공개입찰을 해야 하는 감시와 불신의 시스템 속에서 안도의 나오시마 같은 총괄적 건축미학을 구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고질적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데 문제는 교수님들 같은 분이 입을 닫아버리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뜻밖에 화살은 내게 돌아오고 있었다.
다시 슬로시티 얘기가 나와 영국의 코츠월드 이야기를 했는데 거기는 한번 참관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불꽃 튀는 얘기를 주고받자니 그 맛있다는 목포 홍어 삼합에는 젓가락 갈 새도 없었는데, 그는 오후 9시쯤 “미안하지만 먼저 좀 일어나야 되겠다”고 했다. 아마 다음 약속이 잡혀있는 듯했다. 보나마나 거기 가서도 “신안은 1000여 곳의 아름다운 섬으로…”로 시작하여 속사포처럼 자랑을 쏟아놓을 것이다.
박 군수의 이 일방적이고도 사뭇 무례하기까지 한 자리가 그래도 유쾌했던 것은 한 지자체장이 가진 열정과 비전, 그리고 자기 고장에 대한 강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민선 지방자치단체장 5기를 넘기면서 희망적인 것은 부쩍 박 군수 같은 패기와 열정의 소유자를 자주 만나게 된다는 점이다. 일례로 고동주 전 통영시장은 어떻게 하면 통영을 보다 아름답고 수준 높은 문화예술의 고장을 만들지에 참으로 골몰한 사람이었다. 통영의 한 골목시장 횟집에서 그와 윤이상 음악제며 청마거리, 남망산 조각공원 등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광역 지자체장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이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였다. 특히 경기도 문화의 전당을 모체로 해 모세혈관 문화운동 등 신선한 운동을 펼쳤는데 문화예술의 거의 전 영역에서 전문가를 뺨치는 식견과 추진력을 갖춘 사람으로 기억된다.
이 땅은 우리와 우리의 자식들과 그 자식들의 자식이 이어가며 삶을 담아가야 할 소중한 공간이다. 우리 지자체장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이 점을 인식하여 살기 좋은 곳, 아름다운 곳, 문화예술이 들꽃처럼 만발하는 곳으로 만들기에 열성을 다한다면…’하는 소망을 품어본다. 그래서 떠난 사람들마저 돌아오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주면 오죽 좋을까.
김병종 서울대 교수·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