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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천광암]에어프랑스에서 생긴 일

입력 | 2013-02-22 03:00:00


천광암 경제부장

‘인천공항 7년 연속 세계 최고 공항상(賞)’, ‘대한항공 세계 최고 비즈니스클래스 항공사 선정.’

필자는 이런 헤드라인이 박힌 신문기사를 읽을 때마다 ‘서비스가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세계 최고까지야…’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작년 6월 말 에어프랑스 편으로 파리에 갔을 때 동행자 J가 겪은 ‘황당서비스’를 직접 지켜보며 생각을 바꿨다.
서비스업 생산성 佛-日의 절반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심사대를 향해 100m쯤 걸었을까. J는 문득 비행기 좌석에 스마트폰을 놓고 온 사실을 떠올렸고, 눈앞에 있는 항공사 서비스카운터에 사정을 설명했다. J는 비행기 문을 나선 지 5분이 채 안 지났기 때문에 스마트폰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항공사 직원은 30분 넘게 시간을 끌더니 “입국심사대를 나가서 분실물센터로 가보라”고 등을 떠밀었다.

J는 분실물센터에 다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곳에서 3시간 넘게 기다린 J에게 돌아온 대답은 “물건을 못 찾겠으니 돌아가서 공식으로 e메일을 보내고, 1주일 안에 연락이 없으면 잃어버린 줄 알라”는 것이었다. J에게 답장이 온 것은 2개월가량 지난 뒤였다. “물건을 찾았으니 공항에 직접 와서 찾아가라. 만약 올 수 없으면 배송료 15만 원을 입금하라”는 내용이었다. J가 비싼 비용을 치르고 두 달 만에 되찾은 스마트폰은 온통 긁힌 자국투성이로, 형편없는 중고품이 돼 있었다.

요즘은 항공사나 공항뿐 아니라 백화점 호텔 병원, 심지어 관공서조차도 한국만큼 친절하고 빠른 서비스를 하는 나라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비단 우리만의 평가일까.

올 초 일본의 톱스타 고유키(小雪)가 둘째아이 출산 후 서울의 한 산후조리원에서 몸조리를 해 한일 양국에서 화제가 됐다. 다음은 한 여성잡지가 첫 출산(도쿄의 한 병원)과 두 번째 출산 이후 외부에 모습을 드러낸 고유키를 묘사한 기사다.

“초산 후 본지가 목격한 고유키는 가드레일에 기대다시피 해서 겨우 걸음을 뗐다. 표정도 시종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고 몸은 퉁퉁 부어 있었다. 발에는 굽 없는 신발을 신고 있었다. 하지만 (둘째를 출산하고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날은 굽 있는 부츠를 신고 경쾌한 걸음걸이를 뽐냈다. 몸매는 출산 전의 날씬한 상태를 완전히 회복했다. 경이로운 산후조리를 한 모양이다.”

에어프랑스와 고유키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한국은 당장이라도 서비스 강국이 될 수 있는 훌륭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서비스업 생산성은 프랑스와 일본의 절반에 불과한 수준이다. 국내의 제조업과 비교해도 서비스업의 1인당 부가가치창출액은 제조업의 반밖에 안 된다.

1990년만 해도 제조업보다 44%나 높았던 서비스업의 생산성이 이 지경이 된 원인은 무엇일까. 규제 때문이다. 한국에서 서비스업이라는 범주에 속한다는 것은 금융 세금 전기료 임차료 등 모든 면에서 차별대우를 받는 천형(天刑)의 낙인이었다. 차세대 핵심산업인 소프트웨어나 영상산업의 경우 산업분류가 서비스업에 속한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정부 지원을 못 받다 보니 관련업계가 “우리를 제조업으로 분류해 달라”고 읍소하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박근혜노믹스, 규제 해제에 달려

이번 대선 때 경제와 관련된 가장 큰 공방은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중 누가 더 한국 경제를 망쳐놨느냐 하는 것이었다. 10년간 내상(內傷)이 쌓이다 보니 한국경제는 지금 ‘고용 없는 성장’ ‘온기 없는 성장’ ‘저(低)성장’이라는 심각한 합병증을 앓고 있는 상태다. 3중의 합병증을 고칠 수 있는 유일한 치료법은 서비스업을 옥죄고 있는 대못과 가시를 뽑아내는 것이라고 국내외 경제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서비스 규제를 푼다고 요란한 소리는 냈지만, 흉내 내기에 그친 노무현 이명박 정부를 어떻게 뛰어넘느냐에 박근혜노믹스의 성패가 달려 있다. 최고의 친절과 세심한 돌봄으로 무장한 민간분야는 이미 세계 최강을 향해 날아오를 준비를 마친 상태다.

천광암 경제부장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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