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웅(1962∼)
햇빛이 강아지처럼 뒹굴다 가곤 했다
구름이 항아리 속을 기웃거리다 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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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위에 쑥부쟁이로 피어 피어
적막한 정오의 마당을 내려다보곤 했다
움직이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조금씩 떠나가던 집
빨랫줄에 걸려 있던 구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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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세 시를 지나
저녁 여섯 시의 골목을 지나
태양이 담벼락에 걸려 있던 햇빛들마저
모두 거두어 가버린 어스름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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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은, 굴뚝은, 다락방에 모여 쑥덕거리던 별들과
어머니의 슬픔이 묻은 부엌은
흘러 어느 하늘을 어루만지고 있을까
뒷짐을 지고 할머니가 걸어간 달 속에도
장독대가 있었다
달빛에 그리움들이 발효되어 내려올 때마다
장맛 모두 퍼가고 남은 빈 장독처럼
웅웅 내 몸의 적막이 울었다
까마득히 잊고 지내다 문득 떠오르고, 다시 제 온 곳으로 물러나 사라지는 시공간이 있다. 언덕 위의 교회당, 동네 한복판에 있던 호박밭, 곡마단이 들어서던 공터, 담장 너머로 내려다보이던 한강과 강 건너 흰 모래밭, 어느 늦저녁 누구네 집에서인가 마루에 동네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보던, 내용도 생각나지 않는 영상물, 어둠 속에서 돌아가던 영사기 소리…. 딱히 그리워한 것도 아닌데, 머릿속 저 아래 가라앉아 있다가 마치 무언가 살며시 흔든 것처럼 저 혼자 떠올라오는, 내 어릴 적 시공간들.
‘장독대가 있던 집’은 어머니와 할머니뿐 아니라 그 집 자체에 대한 그리움에 찬 시다. 한국인의 정취와 정서를 소박한 필치로 아련히 그려낸, 가령 박수근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어머니의 슬픔이 묻은 부엌’이라니 아마 아버지로 비롯된 그늘이 드리워진 집일 터인데, 그 그늘로 다른 가족들은 더욱 결속돼 있었을 테다. 집이 아니라 아파트, 개인주택이 아니라 공동주택에서만 살아온 사람들은 ‘집’이라는 공간에 마치 생명체처럼 정드는 심성을 알 수 없을 테다. 이사를 갈 때면 같이 살던 ‘집’을 버려두고 떠나는 듯한 생이별의 슬픔 같은 걸 느끼지 않을 테다. 현재 도시 유목민으로 살아가는, 1960년대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에게 향수를 부르는 시.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