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3월의 눈’ 장오 역 변희봉
눈 내리는 오후 서울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의 상징인 붉은 벽 앞에 선 배우 변희봉. 그는 “드라마 촬영은 순간에 반짝 변신해야 하고 영화는 감독 마음에 들 때까지 수십 컷을 찍는다. 연극은 무척 다른 장르라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한다”고 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손진책 국립극단 예술감독의 주문은 알쏭달쏭하기만 했다. 5일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스튜디오의 간이 무대에 선 배우 변희봉(71)은 “아니, 그래도 한 군데서는 강조를 해야…”라고 하다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청년 시절 그가 연극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고 차범석 선생(1924∼2006) 덕분이었다. 1960년대 중반 차범석은 극단 ‘산하’에서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를 준비하다 한 배우가 펑크를 내자 동향 후배인 변희봉을 불렀다.
“하도 술을 마셔서 삐쩍 야위었을 때인데 비서 역할을 아주 재밌게 했습니다. 이후 4∼5년간 산하에서 만드는 연극 10여 편에 연달아 출연했지요. TV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연극을 안 하게 됐습니다. 차 선생이 ‘망할 자식들, 돈 맛 보니까 여기는 얼씬도 안 하고 그런다’고 농담하셨죠.”
오래 묵은 한옥에 사는 노부부의 하루를 그린 ‘3월의 눈’은 지난해 11월 장민호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도 대본을 찾았을 정도로 애착을 보인 작품이었다. 국립극단은 그의 빈자리를 채울 만한 연륜 있는 배우를 찾아 나섰지만 연극 무대를 소화해 낼 인물을 쉽사리 찾지 못하다 변희봉에게 제안했다. 그동안 장오는 더블 캐스트였지만 올해는 원 캐스트다. 김미선 국립극단 PD는 “변 선생님의 체력과 열정을 믿었다”고 했다. 장민호와는 1993년 MBC베스트극장 ‘부자자효’에서 부자로 출연한 인연이 있다.
“1960년대 말 연극할 때 손 감독은 순둥이에다 말 없는 무대감독이었죠.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는데 어느 날 손 감독이 전화를 해서 ‘연극 할 시간이 되느냐’고 묻기에 ‘연극이 문제가 아니라 얼굴이나 한 번 보자, 밥 먹자’ 했더니 퀵서비스로 대본을 보내더라고요. 연극에 마음은 있었지만, 자신이 없었지요. 그래서 ‘나를 꼭 시키고 싶으면 오디션을 해서 가능성이 있는가 보라’고 했습니다.”
그는 ‘3월의 눈’에서 “이젠 다 비우고 가게”라는 대사가 마음에 꽂힌다고 했다.
“이 작품을 보면 각자 자신들의 부모가 생각날 겁니다. ‘나는 어느 위치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라는 자문도 해볼 것 같고요. 장민호 선생이 이 역할을 했던 마음을 따라서, 그와 같은 마음의 표현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TV나 영화에서 보는 변희봉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 여러 회한을 풀어내는 변희봉을 볼 수 있는 무대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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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 역에 박혜진이 번갈아 출연한다. 3월 1∼23일 서울 서계동 백성희 장민호극장. 1만∼3만 원. 1688-5966